내면아이를 만나러 가는 아침

나와 화해하고 싶어요.

by NORE
세상에는 이런 길, 저런 길, 많이 있지만 목적지는 모두 동일하다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를 타고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오롯이 혼자서 가야 한다네.

그러기에 모든 어려운 일을 혼자 해내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네.

<나로 존재하는 법 > -헤르만 헤세



영화 <메기>에서 그런 대사가 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작년 연말부터 나는 조금씩 구덩이에 빠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조금씩 파고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악의적으로 나를 빠뜨린 건지 아니면 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구덩이를 지나치고 있을 뿐인 건지. 문제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늪처럼 걷잡을 수 없이 내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는 자각이 없었다. 인생은 원래 다 그런 것 아닌가. 힘든 고비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왜 살아‘ ‘지구야 망해라‘ ’언제 죽어‘ 가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은 말들이 진지하게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나를 위협할 때야 알아차렸다. 까마득하게 깊은 구덩이에 빠진 내가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너 여기 있었구나. 몇 달째 잠도 못 자고,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비난과 자책으로 종일 무기력했던 게 바로 너였구나 “


당장 일으켜 세워 이 깊은 구덩이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갑자기 울음이 났다. 멈추지 않았다. 잠옷 바람에 무릎을 접어 팔을 감싸고 고개를 박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봐라만 봤다. 섣불리 곁에 갈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마치 커다란 공처럼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도 나처럼 울고 있으면 어떡하나. 어깨를 두드려주면 고개를 좀 들어서 나를 봐줄까. 근데 우리가 마주 보면 좀 나아질까.


요 근래 이른 아침미다 따듯한 커피를 옆에 두고, 흔들의자에 앉아 조성진이 연주한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구덩이에 빠진 나를 만나러 간다(내가 용기 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드뷔시의 달빛이 아니면 출발이 어렵다). 어떤 날은 곁에 가서 어깨를 토닥토닥하고(그래도 고개를 절대 들어주지 않지만), 어떤 날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빛을 찾는 나를 본다. 또 어떤 날은 바쁘게 구덩이를 뱅뱅 돌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의 어리석음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얼른 빠져나오는 일을 해야 하는데, 나는 여기에 빠져버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구덩이가 생긴 이유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한다. 가뜩이나 무기력한 상태에서 쥐어 짜낸 에너지로 고작 한다는 게 깊은 구덩이를 파고 있는 꼴이었다니.


‘결국 이 구덩이는 내가 만든 거였구나. 깊게도 팠네.’


구덩이 속에 가둬둔 나에게 미안해졌다. 아마도 내가 처음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보고 울음이 터졌던 것은 본능적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그동안 끊임없이 나를 찾았고, 나는 그것을 외면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답게 살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타인과의 관계, 내가 처한 상황, 사회가 원하는 제도와 관습에 적합한 내가 되는 것이 더 쉬운 길이었다. 어쩌면 이제야 맞닥뜨린 내 안의 내가 나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내면 속의 내가 꽃밭을 뛰놀고 있었으면 참 좋으련만. 40대에 처음 만난 내 안의 나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오랫동안 파고 파고들었으면 스스로 올라올 힘도 없어졌는지.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이 아이를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2주 전 상담을 받다가 ‘당분간 수동적으로 살아보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 뜻을 며칠 동안 해석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만난 내 안의 깊숙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습관처럼 사회적 자아를 바꿔 끼우고, 나를 외면한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마주 보고 화해할 수 있을까.‘


나로 존재하기 위해 한평생을 싸워왔던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내 안에서도 이런 외침이 있지 않을까 해서 적어본다.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내 안에는 이런 필요와 이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삶을 견디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부디,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은 본인과 친하시길. 혹 친해지는 방법을 안다면 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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