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내가 뱉은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원이 몇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내 발언이 대표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은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짜리 신입 코딱지의 돌발행동이 사수는 물론이고 팀장님과 대표님까지 당황스럽게 만들었을 것은 자명하다.
겨우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복잡했다. 아니, 간단했다. 놀랍게도 일이 너무 힘들거나 처음 하는 직장 생활이 버거워서는 아니었다. 이 일이 정말 내 평생의 길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활자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고, 소설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미치도록 매료가 될 만큼은 아니었다. 이 어중간한 애정으로 몇십만, 몇백만 자의 글이 하나의 작품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다. 똑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흐름이 될지 고민하고, 작품의 마케팅을 어느 방향으로 할지 선택하고, 어울리는 표지와 소개글을 고르는 일련의 과정에 모두 진심으로 임할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팀장님과 대표님은 멋모르는 한 달짜리의 퇴사 발언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관심 없다는 태도로 사직서를 수리하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면박을 주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회사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물어봐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감사한지!)
몇 번의 세심한 면담 끝에 나는 피상적인 핑계 대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약간의 유예 기간을 얻게 되었다. 내가 내 손으로 기획하고 담당한 작품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일 때까지였다. 갈팡질팡하던 나는 결국 ‘네가 직접 담당하는 작품이 생기게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그 부드러운 회유에 잠정 승복했고, 오래지 않아 그것을 시험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결과가 어땠느냐고?
나는 3년 차 편집자가 되었다.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강인한 체력,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을 필요로 했다. 언제나 일정에 맞추느라 숨이 가빴고, 사력을 다하느라 진이 빠졌다. 출간일이 코앞일 때면 모래알같이 빽빽한 활자에 파묻혀 모니터만 들여다보다가, 건조한 눈을 문지르며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는 게 예사였다. 마감이 어그러지거나 의사소통에 문제라도 생기는 날엔 울고 싶을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시킨 작품이 플랫폼에 걸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순간이 오면, 기뻤다. 페이지 밑으로 주르륵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그게 칭찬일 때 즐거웠고 비판일 때 속상했다. 경험을 동력 삼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러자 일은 내 생각보다 재미있어졌다.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주 조금 더 이 일을 좋아하게 됐고,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자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멘탈과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배합한 실무자가 되어 있었다. 느리지만 꾸준했던 내 성장과 더불어 회사의 규모도 커졌고, 이제는 막내를 벗어나 후임들도 여러 명 있는 선배 편집자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제자리 같기만 했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꽤 멀리 와 있었다.
여전히 활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고, 소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미치도록 매료가 될 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담당하는 작품에 나의 최선을 안겨 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그날로부터 꾸준히 굳건해졌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애정의 크기가 아니라 책임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
아직도 이 길이 내 평생이 되리라곤 확신할 수 없으나, 내일의 내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확신할 수 있다고. 나만큼의 가벼운 애정과 무거운 책임감만으로도 충분히 잘해 낼 수 있다고.
그러니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하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코딱지에게서도 조그만 가능성을 발견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저는 덕분에 썩 괜찮은 편집자로 잘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