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도와 행복의 상관관계
고양이는 행복감을 준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식육목 고양이과에 속하는 이 작은 짐승은 어떻게 우리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행복감에 대해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에서는 문제정의, 심리학에서는 조작적정의, 기획에서는 분석이라고 한다(아마도). 이름과 의미는 약간씩 다르지만, 아무튼 '네놈의 정체를 파헤치겠다.'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시도이다.
행복한 상태라는 말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상태는 물질의 존재양식을 나타내는 말이다(두산백과).
다시 말해, 상태는 고체/액체/기체 따위를 판가름할 때 쓰는 말이다. 행복이라는 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물질이 아니며, 추구하여 도달할 수 있는 최종 형태 같은 것이 아니다. 행복한 상태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로 풀어쓸 수 있다. 행복감은 정서의 일종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신격화되어있다. 마치 너무나 고귀하고 거룩하여, 아무 곳에나 쓰이면 안 되는 단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행복이 정서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정서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정진하여 결국에 성취해내는 것이 아닌, 그 순간을 음미할 때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순간을 통해 행복감을(혹은 다른 정서를) 느끼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디테일, 정확히는 디테일에 대한 민감도다.
디테일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들은 순간을 잘게 쪼개어 음미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신없는 출근길에도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타이밍이 딱딱 맞는 신호등에도 행복할 수 있으려면, 우선 알아채야 한다. 심지어 그들은 매일 만나던 당신의 향수가 바뀐 것을, 앞머리를 1mm 자른 것을 눈치채 주어, 당신을 기쁘게 해주기도 한다.
디테일에 민감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린 어떻게 하면 민감해질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여행을 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디테일을 보도록 한다. 낯선 공기, 낯선 사람, 낯선 가게 등. 이들은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낯선 것을 접하느라 우리는 과민해지고, 그 결과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사실 내가 살던 곳에도 있던 파란 하늘이지만, 여행지에서는 그 파란색이 디테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늘이 이렇게나 맑고 파랗다니, 너무 행복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유난히 미세먼지가 없고 맑은 날 출근하면서도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가고 연애를 한다. 여행과 연애의 공통점은 음악, 순간의 공기, 유난히 밝은 달, 취향저격인 팔찌, 달콤한 딸기 케이크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이다. 행복한 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날의 특별함보다는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디테일과 민감도다.
고양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오며,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를 민감하게 한다. 얌전히 다가와 내 손에 머리를 부비는 그 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에게 다가올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결정하고 있는 듯한 그 찰나, 요상한 자세로 자고 있는 녀석이 언제 깰지 모른다는 불안감. 고양이는 그와 내가 함께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순간에 집중하도록 한다. 고양이의 애교는, 마치 처음 발을 디딘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다 발견한 예쁜 벽화와 같은 반가움을 준다. 고양이는 여행이며, 연애다.
고양이의 예측 불가능성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낯섦과 같다. 고양이는 우리를 민감하게 하고, 순간을 음미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준다. 그렇게 고양이와 함께인 순간을 음미하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행복감을 준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이제 여행을 가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고양이가 없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고양이가 있으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