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는 실없는 헛소리가 좀 더 많이 필요하다
파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에펠탑이 아니었다. 내 경우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성당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며(탈모), 신분증 검사를 한다.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신신당부 주의를 받고 입장하고 나니 내부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조용히 그 장면을 저마다의 휴대폰에 담기 위해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누군가의 신성한 의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것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내부의 엄숙한 분위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굉장한 아우라와 무게감을 뽐내는 건축물은 그저 기념품 마그넷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 직전, D.P.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D.P. 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단연 '상병 한호(↗)열(↘)'이었다. D.P. 는 전반적으로 매우 무겁고 어둡게 진행되는 드라마다. 한호열은 적재적소에 등장하여 숨통을 틔워주는 캐릭터였다.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고 극에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D.P. 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것이 '이병 안.준.호.'였다면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은 한호열이었다.
이러한 아이러니, 즉 농담(弄談)은 경험의 대비를 만들고 완급조절의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그 순간의 현실감각을 깨우고 깊이를 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농담이라는 단어는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농담(弄談):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농담(濃淡): 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 또는 그런 정도.
(표준국어대사전)
내가 농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간극이 주는 파격의 즐거움 때문이다. 어두움이 없으면 밝음은 존재할 수 없으며, 불행이 없으면 행복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진다. 삶의 모든 요소는 상대성에 의해 드러난다. 불행을 모르는 행복은 없으며 그늘이 없는 빛은 그 밝음을 알아채기 어렵다. 농담이 경험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의미다. 농담은 그 상황의 흐름을 잠시 벗어나게 해 주고, 이를 통해 경험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농담이 없으면 상황이 단조로워지고, 지나친 단조로움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든다. D.P. 의 한호열이, 오징어 게임에서는 무거운 분위기와 대비되는 추억의 게임과 경쾌한 배경음이 그러한 농담(濃淡)을 만들어준다.
사실 우리는 이런 농담의 힘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심지어 잘 사용하는 편에 속할 것이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우리는 온갖 무거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다음날이면 그것을 희화화하는 짤방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힘든 감정들을 견뎌왔고, 어려운 상황들을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도 그럴까?
전 세계에 퍼진 역병, 요동치는 경제지표, 네거티브가 가득한 정치뉴스, 아찔한 재난사고, 연일 보도되는 기사는 피로감의 연속이다. 넷플릭스의 블랙코미디 <돈 룩업>의 흥행은 이러한 피로감이 비단 한국사회의 일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우리에겐 농담이 필요하다. 물론, 문제를 회피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숨 고르기를 통해 보다 본질적인 타개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배양기(잠시 문제에서 벗어나는 시간)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 역시 문제를 회피하는 것과는 다르다. 문제에 매몰되어 잠겨 죽기 전에, 잠시 물밖에 나와 호흡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가깝다.
농담이 부족한 시점이다. 우리에겐 합리적인 개소리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