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실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임에는 자유도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자유도가 높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플레이 방식이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때문에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자유도가 높은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게임의 흥행을 평가하는 지표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유저의 플레이타임을 빼놓고 성공 지표를 논하기는 어렵다. 플레이타임, 즉 지속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유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계속 게임에 머물도록 하는 장치들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도전과제(퀘스트)를 제시하며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게임을 설계한다. 유저들은 '다음에 뭐하면 되지?'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이, 그저 NPC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편하게.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다. 선택지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있을까? 맛집은 메뉴가 많지 않다. <백종원의 골목빌런식당>에서 단골로 등장한 솔루션을 '메뉴를 줄이는 것'이었다. 저녁 메뉴로 '아무거나'를 말했다고 해서 메뉴가 가장 많은 김밥천국으로 연인을 데려가서는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선택지가 많은 상황은 뇌를 피로하게 만든다. 선택 기준을 선정해야 하고, 기준에 맞추어 선택지들을 비교한 뒤, 후보군에 오른 선택지 외 다른 결정은 없는지, 후회하지 않을지 가정해보아야 한다. 게임에서 계속해서 퀘스트로 유저를 안내하는 이유, 맛집이 메뉴를 줄이는 이유, 그리고 MBTI가 유행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MBTI는 인간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심리학자들이 MBTI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취약점이다. 심리검사에는 MBTI 외에도 다양한 검사가 있으며, MBTI보다 구체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검사도 많다. 그리고 어떠한 성격검사도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한 사람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검사 결과를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MBTI가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MBTI의 유행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 전에, 그 이면에 내재된 욕구를 읽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성격유형은 사실상 무한에 수렴한다. 한 사람 내에도 다양한 성격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 답변 가능한 선택지는 무한에 가깝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무한한 선택지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피로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엠비티아이는 직관적이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이 궁금한 그 사람이 무슨 유형이라고 결론 내려준다. 주기적으로 유행이 돌아오는 심리테스트들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다. 간단한 검사를 통해 내가 무슨 유형인지 분류하여 알려준다.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그리고 분류된 유형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상대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주변에 공유하고, 같은 유형을 반가워하며 타인의 유형을 예측해본다. 대화의 공통 소재가 되고, 복잡 미묘한 설명을 짧게 줄여서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MBTI 덕분에 '저는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려고 하며,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라는 설명을 'ENFP'라는 하나의 명사로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분류하고 결정 내리길 바란다. 그것도 남이 간단하게 해 주길 바란다.
글의 제목과 달리, MBTI는 우리의 자유도를 낮춘다. 그리고 자유로울수록 좋다는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우리는 자유도가 낮은 상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을 경계해야 한다. 자유도가 낮은 상황이 선호되는 것은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지, 언제나 그것이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우리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과 특별함은, 16가지 유형 속에 가둘 수 없다. MBTI를 통해 성격유형을 분류하고, 나를 설명하고, 타인을 예측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MBTI를 비롯한 심리테스트 유행의 또 다른 이면에는, 표현 욕구가 있다.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나를 정의 내리고 분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그것을 주변에 공유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알리고 싶어 하고, 알아주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편리할 수 있으나, 완전할 수 없다. 같은 유형일지라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인상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MBTI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는 긴 문장을 짧은 단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정의 내리고 범주화하는 것은 소통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 효율성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 글을 통해 적어볼 예정이다. 물론 다음 글이 아닌 그 이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확실치 않은 것이 내가 P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