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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03. 2018

매일 아침 밥짓는 소리처럼, 쓰기

반복적으로 글을 쓰는 일

건강검진과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밥을 먹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들리는 엄마의 밥 짓는 소리는 '이제 곧 일어날 시간이 되었구나'하는 알람이 되기도 하고,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있어도 되겠구나'하는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밥을 먹다가 문득 '내가 죽는 순간에 어떤 장면이 떠오를까?'라는 엉뚱한 질문이 떠오른 적이 있다. '매일같이 엄마가 해주는 아침밥을 먹던 지금이 떠오르지 않을까'라는 더 엉뚱한 대답을 떠올리며 잘 넘어가지 않는 밥 한 숟갈을 목구멍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반복적인 일은 지루하고 따분하다.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고, 틀에 박혔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불안했다. 그 생각이 조금 바뀐 건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리던 순간부터였다. 두 발이 허공을 헤맬 때 처음으로 죽음을 느꼈고, 동시에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지나갔다. 번지점프 줄에 매달린 채 보트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는 '살았다'는 생각보다는 방금 전 머릿속을 스쳐간 사람들과 함께 '매일 해오던 일을 할 수 있음'에 뼈저리게 감사했다. 손에 땀을 쥐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영문을 모를 것이다. 내가 왜 그녀를 다시 만나자마자 호들갑을 떨고 좋아했는지.


글쓰는 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밥 짓는 소리처럼 꾸준하고 성실했으면 좋겠다. 때로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지라도 이제는 안다. 애초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대단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일이란 것을. 그저 가족들이 오늘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평생 아침밥을 지어준 엄마처럼, 나의 생각 조각들을 차곡차곡 문장의 형태로 쌓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왠지 오늘은 글을 쓰는 내 모습 위로 밥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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