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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03. 2018

도대체 '내 것'이라는 게 있을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면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 되어 버린다

"A 회사에서도, B 회사에서도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꽤 멋진 말이 될 줄 알았다. 마케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자리였고, 나름 자료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멋지게 발표했다, 고 생각했다.     


"수진님 생각엔,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했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고심했는데, 바로 걷어차인 기분이 들어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2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민망하고 창피할 뿐이다. 자료조사랍시고 인터넷을 조금 뒤지긴 했지만 우리 서비스에 적용했을 때 실제로 어떠한 효과가 나타날지에 대한 예상은 깊이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어쩌면 나는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남들이 해낸 결과가 팩트고, 훨씬 유능한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이니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막내로 자란 나는 집안에서 의견을 낼 일이 많지 않았다. 하루는 아빠 앞에서 내 의견을 말을 하려던 찰나, 검지 손가락을 인중에 대는 엄마를 보고 그냥 꿀꺽 삼켜버렸다. 그 후로 세 살이 많은 언니 뒤에 숨어 언니가 하자는 대로 했고, 익숙해지니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 습관은 집밖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나는 A도 좋고 B도 좋아서 뭘 하든 상관이 없는데 친구는 명확히 A만 좋아했다. 우리는 결국 A를 선택했지만 나는 A를 좋아해서 A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A만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B를 포기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의견이 맞든 틀리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면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 되어 버린다. 세상 밖으로 나온 하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작은 목소리들이 비집고 나갈 구멍이 없다.  허황된 생각을 정답인 양 퍼뜨리는 자칭 전문가들의 뻔뻔한 밥벌이가 그렇고, ‘나 땐 안 그랬어’라며 옛날 방식만을 강요하는 높은 분들의 손가락질이 그렇다.        


상사가 '우리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라고 질문한 것은, 추후 효과가 없으면 나에게 따져 묻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한 방법을 따르려고만 하지 말고 나의 생각을 만들어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불편하겠지만 작은 목소리라도 의견을 꺼내야 한다. 지금 갖고 있는 의견이 내 의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을 만들 수 있다.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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