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가수 김윤아 씨는 오랫동안 번아웃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300여 명의 승객이 사망한 세월호 침몰과 같은 어두운 사건, 사고를 보면서 자신이 하는 음악이라는 일이 아무런 필요가 없게 느껴진 것이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음악이 결국은 아무것도 막아내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10년 가까이 번아웃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그녀의 노래를 참 좋아했다. 그녀의 노래는 왠지 회색빛이 감돌았고, 사춘기 시절에 어울리는 반항심도 가득했다. 노래방에서 자우림의 '파애'라는 곡을 부를 때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가사를 외치면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고 고함을 치는 듯한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녀를,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초민감자'끼리 통하는 신호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초민감자란 '지나친 공감 능력 때문에 같은 사건을 겪어도 감정적으로 더 많이 괴로워하는 사람'을 뜻한다. 나 역시 사건 사고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감정에 빠르게 이입이 되어 고통을 느끼곤 했다. 지인들에게 "내가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진심이나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너무 화가 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에세이에 녹여내기도 했지만, 그 글을 출간될 책에 넣지는 못했다. 민감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히 나라는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작아졌다.
사람이 가장 무기력해질 때는 내가 무엇을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밖에 없는데, 이 글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나도 더 이상 빈 화면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써봤자', '써본들'의 함정은 때때로 깊었다. 그럴 때면 나는 댓글을 읽었다. 나는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가급적 대댓글을 달기 위해 노력한다. 내 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는 사람,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는 사람, 희망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곱씹는다. 함정에 빠지려 드는 나를 다시 바깥으로 끄집어내주는 손들이었다.
음악과 글의 공통점은 그것이 가진 힘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 들은 자우림의 노래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취업준비생 시절에 읽은 책 한 권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학창 시절 내내 나의 MP3에는 자우림의 노래가 담겨 있었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시험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이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노래는 언제나 내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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