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진아는 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이다. 늘 혼자가 편한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밥을 먹을 때는 유튜브 먹방을 보고 잠을 잘 때도 혼자 TV를 틀어 놓고 잔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사는 옆집 남자가 포르노 잡지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동시에 회사에서는 1:1 신입사원 교육을 맡게 된다. '선배님, 선배님' 부르며 점심을 같이 먹자고 따라다니는 '수진'이 달가울 리 없었고, 혼자 밥 먹기가 힘들다며 따라온 수진과 결국 멀찍이 떨어져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죄송한 일이 없어도 죄송하다고 인사부터 해야 하는 콜센터 업무에 수진은 지쳐갔고 이명 증상까지 보이다 신입 교육 5일을 다 채우지 못한 채 무단결근을 한다. 진아는 책상 위 수진의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아무렇지 않은 척 업무를 이어가 보려 하지만, 진아의 마음은 며칠간 이미 뒤흔들려 있었다. 퇴근 후 수진에게 전화를 건 진아가 한참 망설이다가 말한다. 사실 자기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다고.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나도 가끔 회사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친한 동료들이 모두 점심 약속이 있거나 같이 밥을 먹는 동료가 휴가를 쓴 날, 이어폰과 지갑을 챙겨 누구보다 빨리 사무실을 벗어났다. 다른 동료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수진님 혼자 밥 먹어요? 같이 갈래요?"라고 물어봐주시곤 했는데 원래 드시려던 메뉴가 내가 못 먹는 순대국밥이거나 사실은 오늘 두 분이서 긴히 할 얘기가 있었는데 내가 불청객처럼 끼게 되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해서 차라리 그냥 빨리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게 편했다.
처음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는 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민망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본의 아니게 혼자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혼밥 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진 데다 이제는 혼밥 하기 좋은 식당 몇 군데를 미리 알아두는 짬바가 생긴 터라 예전만큼 혼자서 밥을 먹는 게 불편하지 않다. 사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료와 밥을 먹으러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신경이 쓰여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지니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밥을 먹으러 갈 동료가 있어도 자발적으로 혼밥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정말로 혼밥이 아무렇지 않아진 건지, 그래야 해서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여전히 혼밥이 어려운 건지. 영화 속 진아는 혼밥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전히 혼밥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같이 밥을 먹자고 낑낑거리며 따라다니는 수진과 달리, 혼자서도 척척 잘 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TV 소리에 기대어 잠을 자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스마트폰 화면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아는 아마도 점점 사람들과의 소통을 끊고 방안에 자신을 가두다 보면 옆집 남자처럼 히키코모리가 되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수진에게 전화를 건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평생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쇼핑도 잘하고, 혼자 여행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행동 속에는 (스마트폰 속의 사람이라도) 사람과의 연결이 필요하다. 하루 이틀 정도야 혼밥을 하는 것도 좋고, 일이 많을 때는 샌드위치로 빠르게 점심을 해결하는 게 편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또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혼밥한 다음 날, 휴가를 마치고 온 동료와 같이 팔짱을 끼고 분식 먹으러 갈까요, 쌀국수 먹으러 갈까요 하는 내 얼굴은 분명 어제보다 밝았다.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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