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읽고 또 읽어야 그제서야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by 유수진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 - 보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윌리스 반스톤, <보르헤스의 말> 中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사람들을 보면 질리지도 않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봤던 영화를 또 보면 처음 볼 때는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부분을 다시 볼 수도 있고, 처음 볼 때보다 더 심도있게 생각하면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물론 나도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명깊게 본 영화 몇 편은 두 번 이상 보기도 하지만 그들처럼 굳이 찾아서 보진 않았다. 영화가 개봉된 지 한참 지나 텔레비전에서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을 때, 쇼파에 누워있던 김에 우연히 보게되는 정도일 뿐이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유는 세 가지다. 일단 이미 읽은 것을 또 읽는 게 재미가 없고, 한 번 읽었으니 대충 다 아는 내용이고, 읽었던 것을 또 읽을 시간에 새로운 것은 읽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째 이유다. 하루 중 책을 읽는 데 투자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다양한 책을 읽어서 각양각색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더 재미있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봤던 것을 보고 또 볼 시간에 새로운 것을 탐닉할 수 있다는 건 효율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확실히 수박 겉만 핥아먹는 것처럼 깊이가 얕은 것은 사실이다. 읽은 것을 또 읽는 게 재미가 없는 이유는 '신선함'이 덜어진 것이지, 그 본연의 재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 번 읽었으니 대충 다 아는 내용이라고 여기는 것은 또 다른 책을 읽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난 내 생각보다 기억력도 좋지 않고 한 번에 빨아들일 수 있는 지식과 텍스트의 양도 소량이라 사실 무언가를 한 번 읽고선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짧은 문장 하나도 읽고 또 읽어야 그제서야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문장이 가진 본연의 의도와 전체와의 어울림이.


심지어 내가 쓴 글도 읽고 또 읽어야 나의 생각이 잘 들어가 있는지 안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남이 쓴 글을 한 번 읽고 모두 이해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이해력이 남들보다 느리다면 남들이 읽은 횟수보다 한 번이라도 더 읽어야 한다. 부족한 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내가 팔 수 있는 면적의 땅을 가능한 한 깊이 파내려면 삽을 한 번 더 휘두르는 수밖에 없다. 부지런하게 파내다보면 익숙함 속의 새로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인상이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딱딱하고 까칠한 내 첫인상을 깨고, 나를 보고 또 들여다봐준 지금의 내 사람들에게 문득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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