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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집자와 일하며 배운 편집의 기술

by 유수진

최근 두 분의 편집자와 함께 협업을 할 일이 있었다. 한 분은 올해 출간 예정인 책의 출판사 편집자님이고, 또 한 분은 커리어 지식 구독 서비스, 퍼블리에 아티클을 발행하면서 만난 퍼블리의 편집자님이다. 나는 첫 사회 생활을 편집자로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이해도가 없었다. 기껏해야 1년 남짓한 경력이었고, 그때의 나는 '일'에 대한 고민도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런데 두 분과 함께 협업하는 동안, 나는 마치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편집자에 대해 생각했다. 문학동네 편집팀장이자 이연실 작가의 <에세이 만드는 법>을 찾아 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출간해보자고 제안을 받고 몇 번의 기획안이 오가면서, 솔직히 정말로 소름이 돋았다. 편집자님께는 울지 않았다고 거짓말 했지만, 사실 편집자님이 보낸 메일을 열고 이른 아침부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무섭다는 새벽의 어스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적어보낸 기획안 안에는 나도 몰랐던 내가 있었다. 딱 한 번 만난 그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냈다는 게 소름이었다.


언니는 내게 늘 백업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아니?'였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백업을 충실히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늘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백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소설을 잘 쓰는 법을 묻자 '백업'이라고 대답한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사실 백업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자료의 보존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온 콘텐츠를 정리하고 객관적인 시점으로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폴더에 적합한 폴더명을 짓고 거기에 파일을 채워 백업을 하는 것처럼, 편집자님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글을 보기 좋게 묶어 나의 부족한 점을 귀신 같이(?) 채워주셨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정리 차원의 일이 아니라 유에서 훨씬 더 나은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의 기술에 또 한 번 놀란 것은 최근 발행한 퍼블리 아티클 작업을 하면서였다. 이 아티클은 에세이와 달리, 마케터와 작가를 겸하며 쌓아온 노하우와 브랜딩 방법들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의 성격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온 성과와 그 성과가 이뤄진 과정을 구체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이를 테면 내가 회사 밖에서 작가 활동을 한 것이 회사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나의 마케팅적 감각이 작가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시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평소 데드라인보다 빠르게 작업을 마치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빠르게 작업을 마쳐서 편집자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 수정 요청을 받아도 여유롭게 수정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뒤 몇 개의 메모를 달아 놓았다는 답장을 받았다. 구글 문서에 들어가 보니 몇 개가 아니라 수십 개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수정해야 할 게 이렇게나 많다고? (후덜덜)'


메모에는 편집자님이 내 글을 읽으시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나 느낀 점들도 있었지만, 글의 전체 구성을 아주 크게 바꿔야 할 정도의 의견도 있었다. 편집자님의 의견을 염두에 두고 글의 첫 줄로 돌아가 다시 차근차근 글을 읽어보았다.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대대적인 수정을 해서라도 글의 구성을 바꾸는 것이 훨씬 콘텐츠의 매력도를 높일 것이라는 데 공감이 됐다. 기억하건대, 그 수십 개의 메모 중에 공감이 되지 않는 의견은, 글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않는 메모는 한 개도 없었다.


회사에서도, 작가로서도 항상 글과 가까이에서 일해 온 나는 편집이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심지어 현재도 다른 이가 쓴 글을 편집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때로는 그 일이 내 글을 쓰는 것보다 어렵다. 내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도를 전부 이해할 수 없는 데다가 작가의 글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본인이 갖고 있으면서도 글에서 다 드러내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 글의 순서를 어떻게 바꾸면 더 독자지향적인 글이 될 수 있을지, 굳이 수정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또 살핀다. 실력 있는 두 편집자와 함께 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편집의 기술이 늘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작가 자신도 제 글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것은 작가에게 행운이다. 편집자는 가까운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동료 작가가 될 수도, 그 누구도 없다면 백업을 하는 본인이 될 수도 있다. 아, 잊지 말고 백업해야겠다.




*준비하고 있는 책은 올해 출간될 예정이고, 퍼블리 아티클은 여기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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