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는 두 갈래의 길

by 유수진

장류진 작가의 소설 <달까지 가자>에는 같은 제과 회사에 다니는 다해와 은상, 지송이가 등장한다. 세 사람은 입사 동기인 데다 변변치 않은 월급을 받는 비슷한 처지 때문인지 빠르게 친해졌다. 그런데 이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은상 언니가 어느 날부턴가 자꾸 휴대폰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또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지 두 사람에게 비싼 커피도 쏘고, 디저트까지 쏘는 게 아닌가. 혹시 남자가 생겼나, 하고 캐묻자 은상 언니가 말한다.


"가상화폐야"


은상 언니의 꼬드김에 다해도 가상화폐에 푹 빠지게 되고, 하루 종일 가상화폐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서 지송이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 시도 때도 없이 회사 메신저에서 "가즈아!"를 외쳐대는 두 사람이 약간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가까이서 듣다 보니 자신은 그냥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뭔가를 크게 잃은 기분이 든다는 거였다. 가상화폐에 관심 없는 내가 바보인가? 가만히 있는 사이에 손해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달까지 가자> p.119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아주 오래전에 가상화폐 거래 앱에 남겨놓은 소액의 돈이 문득 생각났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두 배, 세 배, 아니 백 배로 불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래도록 잠겨 있던 로그인을 해제해 접속했다. 내가 현금화시킬 수 있는 돈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유튜브에서 한 광고를 보고 기겁을 했다. 한 남자가 등장해서는 "지금은 돈을 벌기 너무 쉬운 시대"라며 "가난한 건 죄이며 정신병"이라고 했다. 지금 이 사람, 나보고 정신병이라고 한 건가? 너무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빠서 바로 광고를 스킵해버린 바람에 어떤 광고인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가난한 건 정신병'이라고 검색해 찾아보니 이미 나처럼 화가 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쉽게 벌 수 있는 돈을 혼자서만 못 벌고 있는 지송이 같은 사람들인 걸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플랫폼의 구독자 수를 캡처해서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구독자가 상승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개인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함도 있지만, 내가 얻은 구독자 한 분 한 분이 하늘에서 뚝 하고 한꺼번에 떨어진 것이 아님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처음 작가가 되기 전, 이미 천 명, 오천 명, 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들을 보며 나는 이미 늦었다고, 저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을 쓰고, 열 편의 글을 쓰고, 백 편이 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구독자 그래프는 천천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편의 글 조회수가 65만을 넘기면서는, 뜻밖의 J커브를 그리기도 했다.


무언가를 쉽게 얻는 방법이 있어서 그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를 천천히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또한, 얻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지금은 기업가치 4조원이 된 마켓컬리의 첫 시작은 쉬웠을까? 창업 초기, 투자를 받기 위해 100번도 넘게 피칭을 했다는 김슬아 대표는 한 밴처캐피털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투자자로부터는 여자라서 리스크가 있다며 자신이 왜 투자를 해야 하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드러난 부분이 이 정도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이 그녀가 가는 길을 가로 막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이나마 어려웠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잘못된 부분들이 조금씩 고쳐지고, 그 덕분에 후배들은 갈고 닦인 길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본인의 몫. 가상화폐 거래앱을 켜는 동안 나도 소설 속 은상 언니처럼 떡상을 맞아 달까지 도달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잠깐 내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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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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