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늦게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몇 년 전에 잠깐 함께 일했던 분이 얼마 전 출간된 내 책을 잘 읽었다며, 늦은 시간이지만 꼭 인사를 보내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가끔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확인하긴 했지만 오래도록 연락을 주고받진 않은 사이. 메시지를 받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반갑고, 더 감사했다.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런 메시지가 참 좋다. 늦은 시간이라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진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지금 느낀 이 감정을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것. 감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 때로는 그 감정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퇴색되기 전에 지금, 당장 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바쁜 일이 마무리 된 저녁 혹은 더 늦은 여유로운 밤 시간에 불현듯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내일 아침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보내지지 않은, 임시 보관함 속 메시지는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흔히 새벽에 쓴 글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새벽에는 유독 감성이 폭발하는 시간인데, 그 감성으로 글을 쓰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글을 읽으면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그러니까 새벽에 글을 써서 올릴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보통 나도 늦은 밤 시간보다는 정신이 맑은 이른 아침이나 오후에 글을 쓰기 때문에 비교적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편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다시 읽어도 내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고, 글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도 큰 틀을 벗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에만 터져 나오는 감성이 필요함을 느낀다. 새벽에 쓴 글을 다음 날 아침 다시 읽으면 고칠 부분 투성이지만, 분명 새벽에만 튀어나오는 날 것의 감정이 있으니까.
지나친 조심스러움은 지나친 필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일반 카메라가 아닌 필터 앱으로 셀카를 찍는데 사실 내 실물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사진에서나마 좀 더 날렵한 턱 선과 밝은 피부를 갖고 싶어서 필터 앱을 고수한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확실히 내 실물보다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모습 뒤의 배경에도 필터가 적용이 된다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본 만개한 벚꽃의 색과 다르고, 하늘의 색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흘러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20여 년 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역사 사진을 보면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가까운 과거처럼 느껴진다. 여드름 투성이에, 이상한 표정까지. 어디에 내놓기 부끄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담긴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일을 퇴고라 한다. 퇴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러 번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그 글이 태어나게 된 계기이자 감정은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 지나치게 너무 많은 부분을 고려하다 보면 필터 카메라 속 내가 아닌 내가 있는 것처럼, 내 감정이 아닌 감정이 글에 담겨 있을 테니까. 새벽 감성 가득한 글을 읽을 때 우리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유는, 아침과 낮에는 발현되지 않는 솔직함 때문일 테니까.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번쯤 필터를 벗기고 있는 그대로 마음을 전해보기를. 무례한 연락은 차단 대상이지만, 진정성이 담긴 연락은 오래도록 이어질 인연이 되기도 한다. 메시지를 주신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내고 다음 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필터 없는 만남이 기다려진다.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https://ww-letter.stibee.com/?stb_source=url&stb_campaign=share_pag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