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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를 버리려거든 '차라리' 인도에 버려주세요

by 유수진

합정역에서 글쓰기 강연을 마친 뒤 매니저님과 두 시간 미팅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늦은 저녁이 되었다. 아침 한 끼를 먹고 아무것도 못 먹은지라 너무 배가 고파 오는 길에 빵을 사와 TV를 보며 빵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언니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우적우적 빵을 먹고 있기에 '댓글'을 아직 못 봤다고 생각했단다. 그 댓글은 최근에 내가 쓴 글 아래에 달린 몇몇의 악플이었다.


언니가 본 그 악플을 나도 봤다. 어제도 봤고 글쓰기 강의를 하기 직전에도 봤다. 성격이 예민해서 작은 트러블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인데, 왜인지 모르게 꽤 공격적인 그 악플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비방과 오해를 내가 하나하나 고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강의를 하기 직전에 본 댓글은, 혼자만의 오해를 넘어 다른 독자분들께 오해를 살 만한 댓글이라 대응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 또한 내가 하나하나 고쳐줄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 눈앞에 닥친 글쓰기 강의에 집중을 다하였다.


언니는 내가 입에 빵을 넣을 생각도 못 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의외로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덤덤했다. 나를 잘 아는 지인에게 "나는 소심해"라고 했더니 지인은 "악플 달린 그 글을 안 지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넌 소심하지 않아"라고 했다. 사실 내가 쓴 글에 악플이 달릴 수도 있음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예상을 했다는 건, 문제 되는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부분을 물고 늘어질지 감이 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플이 달릴 수도 있는' 주제를 모두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는 그저 안전한 방향으로만 향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얼마 후, 나는 결국 악플이 달린 그 글을 삭제하고야 말았다. 글에 등장하지도 않는 엉뚱한 대상을 향해 화살이 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글을 쓴 나를 향한 오해는 받을 수 있어도, 다른 대상으로 화살이 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악플을 쉽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악플을 받은 사람들이 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악플러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까짓 거 악플 따위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도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있고, 그 하나의 지점이 무너지면 100가지 중 99가지를 잘 버텨냈다 한들 더 이상 버텨낼 힘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삭제 버튼을 누르면서, 얼마 전 길거리에서 본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나무뿌리 부분에 담배꽁초를 버리려거든 차라리 인도에 버려달라는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오죽하면 이렇게 쓰셨을까 싶다가도 나는 이 경고 문구가 잘못됐다고, 바로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고. 담배꽁초는 나무뿌리 부분에도, 인도에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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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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