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된 직장 상사와 14일간의 미국 여행 (4)
CEO가 된 직장 상사와 14일간의 미국 여행 3편 먼저 읽기
나는 언젠가 꼭 샌프란시스코에 갈 거야
왜 꼭 샌프란시스코였을까? 2012년, 친구 진선이와 함께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간 여수 여행에서 나는 언젠가 꼭 샌프란시스코에 가겠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은 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라는 곡에 푹 빠져서였을 수도 있고 그냥 '샌프란시스코'라는 발음조차 아름답고 미지의 세계처럼 들려서였을 수도 있다. 전라남도 여수에 가는 것조차 부담이었던 나에게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내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이었다.
그리고 10년 뒤, 나는 그 꿈을 이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하도 샌프란시스코 노래를 많이 불러서인지 진선이도 10년 전의 그 꿈을 기억하고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입밖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100%가 아니어도 단 10%라도 이루어진다.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글로 써도 좋고 머릿속으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도 좋다.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스스로 명확하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핵심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이다.
지난 4월, 지연님이 미국에 가자고 하셨을 때 사실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줄곧 작업실에만 박혀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던 모양. 딱히 못 갈 이유는 없는데 내게 '미국 가기'는 너무 크나큰 일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리던 찰나, 번뜩 정신이 들었다.
'미쳤어? 그렇게나 가보고 싶던 미국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 거야?'
나는 정말 '조금만' 생각해보고 바로 '좋아요!'를 외쳤다.
7월의 샌프란시스코는 유독 날씨가 좋았다. 해는 뜨거운데 바람은 선선해서 가을 날씨 같기도 했다. 시카고에서는 컨퍼런스를 하느라 긴장감이 높았던 지연님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긴장을 낮추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어 표정이 한결 편안해보였다. 이른 아침,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Fisherman’s Wharf (피셔맨스 워프)로 향하던 중,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좋은 기분을 참지 못하며 지연님에게 말했다.
"얼토당토않은 소원 하나 말해보세요.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온 것처럼, 말하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져요. 대신 아주 구체적이어야 해요."
지연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소원이 KPI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처럼 느껴져서 이루어질 만한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고. 하지만 소원은 말 그대로 소원. 지금 당장은 현실성이 없는, 요술램프 지니에게 빌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머나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더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그 소원을 내게로 당기게 되기 때문이다.
지연님의 소원을 듣지 못한 채 우리는 피셔맨스 워프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금문교를 횡단하다 골로 갈 뻔한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러고 보니 지연님의 소원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여행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호텔에서 잠들기 직전 지연님이 재채기를 하듯 소원을 말했다. 갑자기 생각이 나신 건지 아니면 여행 내내 고심한 소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말한 소원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 그녀의 것만이 아닌 우리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소원이지만 나도 그녀와 함께 이루고 싶은 소원이기에 손뼉을 쳤다.
2012년 새벽, 여수의 펜션에서 자고 있던 나는 뜨거운 방 안의 온도 때문에 침대 바로 옆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실눈을 떴을 때, 평생 그토록 많은 별이 하늘에 박혀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는 얼른 옆에 있던 진선이를 흔들어 깨웠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소원을 빌진 못했지만, 나는 늦게나마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호텔 창밖으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비현실적 풍경이 펼쳐져 있다. 마치 여수의 별빛 같은 빌딩 불빛을 보며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얼토당토않은 소원을 빌어 본다.
희망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서 생긴다.
- 브레네 브라운, <나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한다> 중에서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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