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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09. 2018

디스코 춤을 권하는 우아한 여자처럼  

우아함은 중력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20대 후반의 배우 지망생 '피터'와 50대 필름스타 '글로리아'의 사랑을 그린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단순히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매스컴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들어온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은, 보통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연상이 아닌, 의외로 연하 쪽에서 먼저 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글로리아는 달랐다. 그녀는 자기보다 스무살도 더 어린 남자에게 '디스코 춤 좋아해요?'라며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나랑 만나볼래요?'도 아니고 같이 디스코 춤을 추자니, 이 얼마나 걸크러시인가! 소녀같은 고음의 목소리와 새침한 말투,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 채 춤을 추는 여리한 몸 동작, 데이트 도중 메이크업을 고치며 언제 어디서든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은 그녀의 나이를 잊게 한다. 나이를 잊은 그녀의 사랑은 우아하다.


나는 길거리에서 홀로 눈을 감은 채 이어폰을 꽂고 춤을 추는 남자에게서, 지하철에 쓰러진 사람에게 한치의 고민없이 달려가 응급조치를 하는 여자에게서 우아함을 본 적이 있다. 그 순간 그들에겐 하나의 목표가 분명히 존재했고, 그 목표를 위해선 주위 사람들의 시선, 말, 생각은 '아웃오브안중'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직선으로 걸어 다니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그의 춤은 유일한 곡선이었고,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주저하는 동안 그녀는 유일하게 응급조치를 하는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사라 카우프먼이 쓴 <우아함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면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다시 우아해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악전고투 중이고 최대한 도움이 필요한 처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아함을 잃어버렸다. 그토록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특성이었고,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 우리가 우리의 몸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의 진수여야 했던 그것을. 21세기의 삶은 급하고 서투르고 불만스럽기 일쑤이다.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대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집에서도 쉬지를 못한다. 뒤에 사람이 오고 있어도 딴 데 정신이 팔려 문이 쾅 닫히게 내버려두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느라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약속 시간에 늦어 뛰어가느라 눈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우리는 주로 앉아서 지내고 축 처져서 다니고 휴대용 컴퓨터에 코를 박고 지내는 등 무신경한 습관에 빠져든 탓에 자세가 구부정해졌다. 우리는 중력에 굴복해버렸다. 인생을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 사라 카우프먼, <우아함의 기술> 中

 

내가 '중력'이라고 여겨온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확실한 건 앞에서 말했던 모든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디스코 춤을 권하긴커녕 단 한 번도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선 적이 없고,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하기는커녕 호의를 베풀었다 잘못될까 두려워 멀찌감히 서서 한심하게 구경만 했다. 나는 그렇게, 고작 한 뼘만큼도 마음의 유연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아해지고 싶다면 한 가지 믿음만 가지면 된다. 중력을 깰 수 있다는 믿음, 우아함은 바로 중력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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