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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16. 2019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서

치뤄야 할 대가를 이해하고 있는가, 대가를 치룰 여력이 있는가   

영화 <미성년>에서 대원은 딸과 아내를 두고 미희와 불륜을 저지른다. 미희는 대원에게 가정이 있음을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른다. 결국 둘 사이에 아기가 생기면서 두 사람의 가정은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


법률상 만 19세에 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 말, '미성년'. 성년이 되면 술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던 때다. 몰래 술집에 들어갔다가 보기좋게 쫓겨난 미성년이었던 나에게, 성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전부 반질반질한 가죽자켓처럼 폼 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년이 되어 성년의 삶을 살아보니, 성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폼 나 보이고 싶은 만큼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일들이었다. 술을 많이 마신 만큼 다음날 게워내야 했고, 알바비로 좋은 옷을 사기 위해 사람들의 침이 묻은 더러운 쓰레기를 내손으로 치워야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 하나 얻자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일했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먹기 싫은 순댓국을 억지로 먹으며 먹을만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나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었기에 회사야 그만두면 그만이었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입장이었다면 그 무게가 여실히 달랐을 것이다.


대원의 딸 혜준(왼쪽)과 미희의 딸 윤아(오른쪽)

대원의 딸인 혜준과 미희의 딸인 윤아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고 버린 아기, '못난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조산으로 태어난 못난이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혜준과 윤아는 학교 시험을 뒤로한 채 화장터로 간다. 화장터에는 '찾지 않는 어린 죽음들'이 있고, 죽음을 지켜봐줄 못난이가 오히려 운이 좋은 아기로 불린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경계는 만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시기도 아니고, 향수와 키스를 선물하는 성년식도 아니다.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는 '대가'의 문제가 있다.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를 이해하고 있는가, 대가를 치룰 여력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거기에서 '있다'라는 답이 나올 때 비로소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 성년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을 두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대원은 미성년이고, 어렵게 번 알바비로 엄마의 출산비를 지불하는 윤아가 성년이다.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대가를 치룰 여력이 없다면 가정을 이룰 자격도 없다. 만약 당신의 가정이 지옥이라면, 답은 하나다. 당신의 가족 중 누군가 제대로 대가를 치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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