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 익숙해지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혼자에 익숙해지기]
언니가 덩치 큰 오빠와 싸움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놀라지는 마세요. 언니가 여덟 살, 내가 다섯 살 때의 소소한 일이니까요. 동네에 소문난 대장부였던 언니는 자기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상대에게만 덤비지 않았어요. 다행히 싸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덩치씨는 언니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컸으니까요. 언니가 덩치씨에게 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섯 살 꼬마는 열이 받았나봐요. 쪼꼬만 게 우리 언니 때리지 말라고 싸움에 덤벼들었다가 엎어지고 말았죠. 그 모습을 본 언니는 열이 받아서 또 덤비고, 그 모습을 본 꼬마는 열이 받아서 또 덤비고….
우린 그 싸움에서 확연히 졌어요. 엉엉 울면서 후퇴했지만 언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억울하지만은 않았다고. 돌이켜보면 코웃음 나는 일이긴 해도 지원군이 주는 힘은 실로 막강했어요.
반면 글쓰기는 오로지 혼자 싸우는 일이에요. 내가 잘못 쓰면 오로지 내 잘못이고 나만 욕을 먹어요. 공동 집필로 책을 내거나 대본을 쓰는 분들도 계시지만 보통 글은 혼자 씁니다. 나는 누구보다 지원군의 힘을 믿는 사람이지만, 글만큼은 혼자 쓰기를 고집해요. 한 편의 글을 두 사람의 손으로 쓰고 두 사람의 몫으로 나눈다는 건 아직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평생을 가족들과 복작거리며 살았고, 언니와 식탁 위 햄 하나를 두고 지지고 볶고 싸우며 자랐지만 작가가 되려면 혼자 있음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혼자 싸운다는 건 글을 다 쓸 때까지 철저히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방문을 닫고 이어폰으로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함으로써 함께 있어도 혼자 있음에 익숙해졌어요.
그렇게 몇 시간이고 혼자 노트북을 쳐다보고 앉아 있어도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철권처럼 또 다른 캐릭터를 불러와서 대신 싸우게 하고 싶어요. 새 캐릭터가 꽉 막힌 문장 한 줄에 쨉을 날려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아쉽게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나는 없어요. 하나의 머리로 꽉 막힌 문장이 풀릴 때까지 치열하게 물고 늘어져야 해요.
글을 쓸 때마다 나는 혼자 링 위로 올라가는 복서가 됩니다. 판은 벌어졌고 나 대신 싸워줄 언니는 없어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딱 하나 아니겠습니까. 정신 똑띠차리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혼자 씩씩하게 싸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