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견 쓰기]

by 유수진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의견 쓰기]


"뭐 먹을래?"

"아무거나"


저녁 메뉴로 뭐가 먹고 싶냐는 물음에 상대방이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아무거나' 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거든요. 정말로 아무거나 다 괜찮아서일 수도 있고, 너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독심술로 나의 마음을 맞혀줬으면 하는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뭐가됐든 아무거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견이 없는 거죠.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의견이 없는 정도로 인생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만, ‘아무거나’ 정신이 일상화되어버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예를 들어 '담당자에게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와 같은 뉘앙스의 말을 주고받을 때가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 책임을 전가하는 말입니다. '담당자에게 한 번 더 확인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인데, 나는 확인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네 책임이야'라는 뜻이거든요. 꼭 모든 사건 사고의 발생은 이러한 애매한 책임 전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삶에서 확실한 의견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자기 의견을 글로 밝히는 건 더욱더 부담스러운 일이죠. 그러나 작가라면 자신의 글에 확실한 의견을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 이유는 방금 전의 문장을 이렇게 바꿈으로써 설명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나 작가라면 자신의 글에 확실한 의견을 담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요. 무척 없어보이지 않습니까. 책임은 독자에게 돌려놓고 작가는 뒤로 숨으려는 거잖아요.


'~인 것 같아요'가 덕지덕지 붙은 글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나 역시 종종 쓰나마나한 말을 씀으로써 불확실함에 굴복하지만 죄책감이 들어요. 작가라면 저녁은 아무거나 먹더라도 내 글은 아무거나로 만들 순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은 난 아무거나 다 괜찮으니 당신이 메뉴를 골라보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