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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an 05. 2019

애프터 신청을 받고 싶어요

[제목 짓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제목 짓기]


소개팅에 몇 번 나가본 적이 있습니다. 고작 한 번의 만남으로 짝을 찾으리라 믿지 않았지만 그냥 궁금했거든요.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소개팅이란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질문을 주고받는 스무고개 게임 같은 거예요. 몇 개의 질문을 주고받는 동안 두 사람은 조금씩 상대방에 대해 알아갑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칠 때쯤 판단하죠. 대화가 점점 무르익었는지 바람빠진 풍선처럼 식었는지를. 만약 서로의 대화가 무르익었다면 누군가, 보통 남자가, 묻습니다. "다음에 또 만날까요?"


다음을 기약한다는 건 상대방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직장이 강남이라고 했는데 어느 건물에서 근무하는지, 취미가 음악듣기라고 했는데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은 거예요. 고작 단 한 번의 식사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법칙이라면 따라야지요. 글의 제목도 소개팅의 첫만남과 같아요. 독자는 짧은 제목(한 번의 만남)을 보고 글을 더 볼지 말지(애프터 신청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니까요. 따라서 작가에게 제목짓기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목은 궁금증을 유발시켜야 해요. 가게 안으로 손님이 들어오게 만들려면 우리 가게만의 매력적인 간판을 올려두어야죠. 왜 그런 가게 있잖아요. 그냥 길을 지나치가도 '어?'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숨은 맛집. 손님이 가게 안까지 들어왔다면 이미 게임은 오버, 그러나 가게를 나올 때 '간판에 속았네'라는 실망감을 안겨주어선 안돼요. 그것만큼 열받고 실망스러운 일이 또 어디있겠어요. 그래가지고 그 맛집이 오래 장사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제목만 믿고 오랜 시간 들여 글을 읽었는데 읽을 만한 가치도 없고 재미도 없어봐요. 과연 그 작가의 글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독자와 소개팅을 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짓습니다. 내 제목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고, 제목 안을 궁금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이 글의 제목에 이끌린 당신은 나에게 애프터 신청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나는 다음 번에도 당신에게 애프터 신청을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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