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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17. 2019

최종 원고 수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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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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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출판사에 투고했던 원고를 수차례 다듬고 매만졌지만, 여전히 '최종'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최종.hwp', '진짜 최종.hwp', '진짜 진짜 최종.hwp' 파일들이 쌓여갔지만 더 이상 고칠 게 없는 마지막 원고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쇄하기'를 눌렀습니다. 노트북 화면 안에 갇혀있던 글씨들이 프린터기 밖으로 배설되었습니다. 쭉쭉 뽑혀 나오는 종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속이 뻥 뚫렸습니다. 나는 어서 종이 뭉치를 한줌에 모아 바닥에 탁탁 소리내어 치고 싶었습니다. 색깔 펜으로 색을 더하고, 포스트잇으로 옷을 입히고 싶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가방에 종이 뭉치를 넣고 다녔더니 금세 닳아빠졌습니다. 종이 끝 부분은 구겨져 너덜거리고, 커피를 흘린 자국도 곳곳에 묻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이 놈이 내 새끼구나, 싶었습니다.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게 아니라 뜨거운 우유를 후후 불어 식혀 먹이고, 냄새 나는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살아있는 아기를 키워낸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어제, 종이 위에 수정한 내용들을 '진짜 진짜 최종.hwp' 파일에 반영해 편집자님께 보내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칠 게 없는 최종은 아닙니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고민은 계속될 테니까요.


조만간 내 원고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그 전까지 우리집 낡은 프린터기는 열심히 돌아갈 거예요. 더 이상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마지막 최종.hwp' 파일을 위해 손으로 만져지고 잉크 냄새가 나는 종이를 쭉쭉 뽑아낼 거예요. 당신의 손에 쥐어질 완성된 책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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