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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22. 201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대요

[결론 정하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결론 정하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평생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명예에 대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등학교 어느 선배는 노트에 썼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게 되겠지.
그래, 근심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중에서



출근하다가 버스에 치이면 어떻게 될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 생각을 입밖으로 꺼냈다면, 우리 가족은 크게 실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철없다고 손가락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망스럽고 손가락질을 받을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죽음을 떠올릴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충실히, 몸담은 회사에 열성을 다하고 퇴근을 하니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어느 날을,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헤어진 다음날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눈물이 흐를 때도 있어요. 처음엔 나도 내가 왜 이런 우울한 생각에 빠지는지 몰랐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성적표에 적어주신 말씀처럼 나는 '우울감에 잘 젖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알았어요. 이런 생각이 드는 날엔 잠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날의 나는 다른 날보다 부모님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을요.


도착점을 정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타는 것은 정처없는 여행이에요. 때론 정처없는 여행도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도착점을 정해야 해요. 평생 기차 안에서 살 게 아니라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도 어느 정도는 결론을 정해두고 글을 씁니다. 확정된 결론은 아니더라도, 어떻게 끝맺음 할 건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정합니다. 호기롭게 시작된 첫 번째 문장 이후, 글이 흰 바탕을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제대로 살고 싶은 날엔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싶은 날엔 헤어짐을, 글을 잘 쓰고 싶은 날엔 마지막 결론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말 우울한 일은, 충실히 살고 있지 않으면서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연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작가로서 우울한 일은, 무엇을 쓰는지도 모른채 문장의 중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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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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