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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31. 2019

남의 감정을 가르는 면허를 갖는다는 것

[남의 감정을 가르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남의 감정을 가르기]


 

열심히 공부해라. 의과대학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성실히 해야 하는 이유는 의사로서 기본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의사는 남의 몸을 가르는 면허를 부여받는 사람이다. 의과대학의 방대한 학업량과 공부에 대한 태도는 의사를 만들어가는 기초 자질 형성과도 연관된다. 엄청난 양의 공부를 열심히,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이국종, <골든아워> 중에서


어릴 적 눈 위가 찢어져 몇 바늘 꿰맨 것을 제외하고는 수술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잔병은 많아도 큼직한 질병과 사고는 겪지 않았으니 이만한 행복이 없겠지요. 그럼에도 종종 주사를 맞거나 건강검진에서 몸에 조그만 혹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단 한 사람, 의사 선생님만 보이기 시작해요. "선생님, 저 살 수 있는 거죠? 선생님만 믿습니다!”


만약 내가 큰 사고를 당한다면 나와 내 가족은 의사 선생님께 내 몸을 맡길 거예요. 그분이 나를 살려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님의 말씀처럼 의사는 '남의 몸을 가르는 면허를 부여받은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면허는 취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2011년에 운전 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지금 혼자 차를 끌고 나간다면 시한폭탄입니다. 면허라는 것은 어쩌면 '이제부터 실전 공부를 시작해도 좋다'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론은 익혔으니 실전으로 가서 살아있는 공부를 해도 좋다는 통과 의례인 거죠. 초보 운전자가 혼자 운전을 해도 안전할 만큼 운전 연수를 받고 이런저런 도로 상황을 겪어보듯이, 초보 의사는 선배 의사 옆에서 다양한 사례의 환자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겠지요.


만약에 작가에게도 면허가 있다면, 위의 말을 조금 바꾸어 '남의 감정을 가르는 면허'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느 책에서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어느 책에서는 도전 정신을 얻어오기도 합니다. 곪을 대로 곪은 감정의 자물쇠를 책이 갈라준 것이죠. 운이 좋은 날엔 골이 깊었던 난치병을 기적처럼 깨준 책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책은 어린 아이의 것과 같은 새 감정이 돋아나게 해주었죠.


나는 감히, 남의 감정을 가르는 면허를 취득하고 싶습니다. 책 한 권를 낸다고 해서, sns상에서 유명해진다고 해서 면허를 취득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때로 당신이 외롭거나 당신을 위한 글이 쓰고 싶어 나의 책을 찾아왔을 때, 잊고 살던 감정을 꺼내간다면 그때쯤이면 실전 공부를 해도 좋다는 면허를 취득한 것이겠지요.


작가는 남의 감정을 가르는 면허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방대한 글의 양과 독자에 대한 태도는 작가를 만들어가는 기초 자질 형성과도 연관됩니다. 당신을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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