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지 않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아끼지 않기]
몇 년 전, 언니는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한 화려한 드레스를 자주 샀고, 나는 평상시에 입을 검정 슬랙스나 단색 셔츠와 같은 기본 아이템을 잘 샀습니다. 언니가 나보다 사회 생활을 일찍 했으니 가진 자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옷을 아끼다 결국 '무엇'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죠.
"비싼 돈 주고 옷을 사서 왜 옷장에 모셔?"
"언젠가 입을 거야"
그 언젠가는 도통 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유행이 지났고, 또 사이즈가 맞지 않았어요. 나도 언니처럼 사회 생활을 몇 년 하면서 기본 아이템들이 어느 정도 쌓이자 예쁘고 화려한 옷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격주에 한 번 정도, 보통날보다 더 꾸미고 싶은 주말에 입을만한 옷을 샀어요. 그러나 나는 단 하루도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그 다음날, 예쁜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중요한 날이든 평범한 날이든 상관없이 가장 예쁜 옷은 가장 빨리 입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좋은 아이디어는 예쁜 옷과 같습니다. 나는 쓸만한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가급적 빨리 꺼내어 씁니다. 모셔두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 글감을 발견했을 때의 감각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날 아껴둔 옷을 처음 꺼내어 입는 짜릿함도 좋지만, 막상 당일의 날씨와 맞지 않거나 어딘가 적응이 안된 느낌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어요. 그럴 바에 나는 좋은 옷을, 그리고 좋은 글감을 가급적 빨리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좋습니다.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30편에 가까운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만큼의 글감을 미리 준비해둔 것도 아니었고, 오래도록 기획한 것도 아니었으니 나에게 맞는 '옷'일지 아닐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요. 단순히 내 자신을 스스로 '작가'라고 믿으며 더 나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한 편 한 편 글로 쓰다보니 점점 내 것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랗고 못 생긴 반죽 덩이가 엄마의 손을 거쳐 비로소 반달 모양의 송편으로 거듭나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지금도 내 메모장에는 몇 개의 글감들이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글감이 세상 밖으로 나올 적당한 때, 가장 좋은 때는 ASAP, 가능한 한 빠른 날이라고 믿어요. 아끼다 무엇 만들지 않으려면 첫째도 둘째도 결국 부지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