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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06. 2019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했습니다

[당연해지지 않기 ]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당연해지지 않기]



우리집 설거지 담당은 엄마입니다.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도 시집 가면 마르고 닳도록 할 게 설거지라며 웬만하면 딸의 손에 물을 묻히지 않으시려고 합니다. 나는 그게 싫어요. 밥을 먹은 후 가족들은 늘 그랬듯이 거실로 가 텔레비전을 보고, 엄마는 당연스레 고무장갑을 끼는 게 싫어요. 엄마는 아주 가끔을 빼고 평생 가족들의 밥그릇을 설거지 하시지만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내가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편하게 느껴진 적도 없습니다.


어쩌면 나는 당연해지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희생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걸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이해했고,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딸로서 엄마의 행복에 발을 맞춰드려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러나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온갖 습진으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처럼 마음마저 거칠어져 버릴까봐 무서웠어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배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낯설게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글을 쓰려면 매일 보는 옆집 개도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제도 어제도 만난 네가 오늘이라고 새롭게 보일리가 있겠냐고요. 그런데 내가 찾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대상을 진심을 다해 좋아하면 되더라고요. 진심으로 좋아하면 어제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너의 모습도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져요.


큰 시리즈 안에서 짧은 글을 여러 편 쓰다보면 틀이 만들어집니다. 일정한 형식으로 글을 쓰면 리듬이 안정되고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도 모르게 이 푹 꺼진 소파에 눌러앉게 돼요. 습관적으로 썼던 문장의 흐름이나 비슷한 단어를 깊은 고민없이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지요. 그럴 땐 내가 이 시리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되새겨보려해요. 예전에 쓴 글을 하나둘 꺼내어보며 내가 이 시리즈를 얼마나 예쁘게 만들고 싶고, 끝까지 잘 이끌어나가고 싶었는지 그 첫마음을 돌이켜봐요.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했습니다. 내일부턴 또 엄마가 설거지를 할 테고, 언제까지 엄마가 내 설거지를 대신 해줄지 모르겠지만 평생 엄마의 거친 손을 당연하게 여기진 않을 거예요.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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