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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15. 2019

입사만큼 기분 좋은 퇴사를 했습니다

#1. 세 번째 퇴사를 하고

장래희망은 회사원 1편.


세 번째 퇴사를 했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며칠간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도 소식을 들은 초반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퇴사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동료들도 잡동사니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내 책상이 비어져가는 것을 보니 내가 떠나는 게 조금씩 실감이 난다고 했다.


한 회사에 다닌 시간이 3년 반. 스물 여덟살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무렵, 나는 강남으로 첫 출근을 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발 디딘 적이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이곳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플랫폼, 엔트리의 홍보 담당자로 일했고 또, 부스트코스 디지털마케팅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자로 일했다. 새로운 분야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던 스물 여덟의 나는 빠르게 움직이는 업무 속에서 허우적거리곤 했지만 모든 게 감사했다. 입사한 지 이튿째날엔 심하게 체를 해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결국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만큼 어리숙했던 초년생이었던 나는 3년 반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세하지만 단단하게 성장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든지 경험할수록 느는 것 같다. 세 번째 퇴사는 이전에 겪었던 두 번의 퇴사와는 확연히 다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기분 좋은’ 부분이 많다. ‘지긋지긋한 회사를 벗어나서 기분이 좋다!’ 뜻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닐 수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배우기 위해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고 그만큼 힘들게 결정한 퇴사다. 아무리 미운 사람과 헤어져도 마냥 기분 좋지만은 않은 것처럼, 퇴사도 마냥 기분 좋은 퇴사는 없다. 다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입사할 때 느꼈던 기분 좋은 두려움을 퇴사할 때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걸 세 번째 퇴사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바로 사람 때문에.



내 퇴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잘 선택했어. 이때쯤 조금 쉬어가는 것도 좋지”

“한 번 더 고려해보는 건 어때?”


퇴사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격려하거나 한 번 더 고려해보기를 권했다.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나도, 퇴사에 백 퍼센트 정답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퇴사’라는 단어 앞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처럼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근심했다. 두 번째 퇴사를 겪을 때만해도 내 퇴사에 대해 같이 고민해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친구들이나 가족이 전부였다. 그러나 세 번째 회사에서 만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시는 선배님이나 동료들과 내 퇴사에 대해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 좋은 퇴사를 예감할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퇴사를 결정하고 해야 할 목록을 적을 때 가장 앞 부분에 적은 항목이 ‘감사 인사하기’였다. 나는 솔직히 회사를 다니면서 받은 도움이 정말 많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큰 것부터 자잘한 것까지 늘 질문거리가 많았는데, 그것을 귀찮게 느끼지 않고 가르쳐주신 선배님과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거의 전무했을 것이다. 직접 만날 수 있는 분은 직접 만나 뵙고, 만나뵙기 어려운 분들은 전화나 메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다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분들께 인사를 드리게 됐다. 거의 모든 분들이 5분도 지나지 않아 답신을 해주셨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퇴사가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인수인계서를 다 작성한 후 후임자에게 발송하려고 ‘발송’ 버튼을 누르려는데 쉽게 눌러지지가 않았다. 뭔가 빠뜨린 게 있지 않을까, 후임자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게 염려스러웠다. 그렇게 몇 번을 뜯어쓰다가 알았다.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이 곧 ‘내 새끼’였음을. 솔직히 일하기 싫은 날도 많았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에 등돌리지 않고 내 새끼처럼 안고 업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가 직원을 믿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의 일을 곧 내 일로 만들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친한 동료들과 회사 동료로서는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했다. 혹, 내가 너무 기분 좋게 퇴사를 하는 것처럼 보여 그들에게 허무함을 안겨주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이전 회사에서 퇴사를 할 때 가장 후회되었던 점이 바로 남아있는 동료들을 배려하지 못한 점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기분 좋은 퇴사’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퇴사가 여전히 너무 힘들고 어렵다. 익숙한 환경과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나 다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꺼내어 보이고 새로운 사람들과 결을 맞춰나가는 일은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이 더 크다. 그런 나를 동료들이 응원했다.


수진님은 뭐든지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회사 밖에서도 계속 만날 동료라서 기분이 좋다고.


입사만큼 기분 좋은 퇴사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나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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