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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17. 2019

잔말 말고 그냥 해

#2. 회사생활 필수품, 실행력

장래희망은 회사원 2편.


“예? 보도자료를 배포하라고요?”

“예에? 신규사업을 매니징하라고요?”

“예에에에에? 2주만에 1,000명을 모집하라고요?”


회사에서 잘못 들은 줄 알았던 말들은 알고보면 전부 제대로 들은 말들이었다. 가는 귀 먹지 않은 내 귀는 생각보다 잘 작동하고 있으니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보도자료를 쓰고, 기자 리스트를 만들어, 최종 검토 후 배포까지 맡아야 했을 땐 눈앞이 무덤이었다. 보도자료 관련 책이란 책은 다 찾아 무턱대고 작가님께 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은 강남 사무실에서 시작되어....’로 시작되는 하소연을 담은 스팸메일이나 다름 없었다. 그만큼 내게 맡겨진 책임에 당황스러웠다. 대신해달라고 미룰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못한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쓰고 만들고 보낼 수 밖에. 입밖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가지 생각은 ‘정신만 똑띠 차리자’였다. 눈알이 빠지게 확인하고 또 검토하면 최소한 쫓겨날 일은 없다! 처음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 처음이 아닌 척 당당하게, 어리다고 얕게 볼 수도 있으니까 30대 중반의 진중한 어른인 척, 혼자 마음속으로 별의별 생쇼를 하며 나는 그렇게 첫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신규 사업을 매니징하고, 동료들과 함께 2주만에 천 명 이상의 컨퍼런스 참관객을 모집했다.


나는 우유부단한 편이다. 어느 정도 계획이 잡히지 않으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계획을 세우겠다고 다이어리를 펼쳐놓은 채 세월아네월아만 되뇐다. “어떻게 2주만에 천 명을 모아요?”라며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운전을 하고, 이벤트를 만들었다. “어떻게 제가 신규사업을 매니징해요?”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대고 있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기존에 진행됐던 사업의 히스토리를 찾고,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굿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다녔다.


“잔말 말고 그냥 해.”는 내 마음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그 말이 그렇게나 무섭고 외롭게 들렸다. 잔말을 왜 말아야 해? 얼마나 많은 잔말들이 있는데, 그냥 하라니! 하지만 그냥 해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생각보다 정말 별 거 아닌 ‘잔말’을 늘어놓으며 주춤거렸다는 것을. ‘일단 하면’ 내 컴퓨터에만 수줍게 저장됐던 보도자료가 실제 신문 기사로 나오고,  ‘일단 하면’ ppt 기획안에 그쳤던 신규 사업이 실제 사업의 모양을 갖춰 정착되고, ‘일단 하면’ 두 자리 숫자였던 페이스북 팔로워 수가 세 자리, 네 자리 숫자가 된다.


평생 망설였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것도,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내게 된 것도, 남에 불과했던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도, 모두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잔말말고 그냥 해” 정신 덕분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떠나온 속초에 하루 더 묵을까? 응, 잔말말고 그냥 입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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