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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30. 2019

곱창 빼고 다 괜찮아요!

#3. 회사에서 너무 아플 때

장래희망은 회사원 3편.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였다. 어제 점심 시간에 먹은 곱창전골이 잘못된 듯 했다. 곱창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동료들이 먹으러 간다길래 무작정 따라나섰다. 빨리 친해지고 싶었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화장실을 간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자주 화장실을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곱창전골을 먹은 다음 날, 회사에서 거의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사무실과 화장실 사이에 벽이 없어 화장실 바깥 문을 닫지 않으면 사무실 내에 물을 내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아마 다들 일에 집중하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직원들 사이를 지나쳐 화장실로 갈 때마다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창피해 죽는 게 먼저일까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죽는 게 먼저일까, 알 수 없었다.  


탈수 증세 때문에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것저것 업무 관련 설명을 듣느라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는데 내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라가있었다. 그래도 차마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는 건 왠지 징징거림처럼 들릴 것 같아 싫었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언니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퇴근하자마자 응급실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고. 아주 어릴 적 언니와 장난을 치다 눈썹 아래가 찢어진 후로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바로 그 곳으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주위 눈치를 살피며 가방을 챙겼다. 다행히 불필요한 야근 문화가 없어 사람들도 빠르게 퇴근 준비를 했다. 나는 최대한 멀쩡한 척 빌딩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흐렸다. 2호선 지옥철을 타고 동네에 있는 대학 병원으로 향하는 사람은 나인가, 너인가, 누구인가.


수액을 맞자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급격히 줄었다. 엄마에게 말하면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 언니와 나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화장실 소동은 끝이 났고 다음 날부터는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메뉴로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그날 아프다고 동료들에게 솔직히 말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고, 오히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동료의 시간을 뺏는 것이 더 불편을 끼치는 일이었을테니까. 만약 다른 동료가 내게 아프다고 말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그가 최대한 편하게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다.


그후로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꼭 말한다.

"곱창 빼고 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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