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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06. 2019

자기소개하게 멍석 좀 깔아주세요

#4. 자기소개는 어떻게 하는가

장래희망은 회사원 4편.


입사하고 일주일이 다 되도록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못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림은, 입사 첫날 직원들이 앉아있는 자리의 한가운데에 뻘쭘하게 서서 "안녕하세요, 저는 홍보 담당자로 입사한 유수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헤헷)”라고 인사하고 앉는 것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자기소개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처음 경험해보는 소프트웨어 교육 회사에서 잔뜩 얼어붙은 나는 꿈에서도 "제 소개를 좀 드려도 될까요?"라며 너스레를 떨 수 없었다.


일주일동안 직원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점심도 먹고 오후 스트레칭도 하며 조금씩 친해지긴 했지만 뭔가 께름칙했다.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직원 분들도 있었고, '정식'으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자기소개하고 싶어 죽을 지경을 느낀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원 전체가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전직원 회의가 있는 날이에요."


부랴부랴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들고 회의실로 따라갔다. 주변을 살펴보니 직원 대부분이 노트북을 챙겨들고 왔다. 챙겨온 다이어리와 펜이 조금 쑥스럽게 느껴졌다.


"지난주에 본인이 한 업무와 이번주 업무에 대해 공유해주시면 됩니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간단하게 발표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맨 끝자리에 앉은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심하게 나댔다.


"수진님은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셨으니까 맡은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때다 싶었다. 나는 바이브레이션이 잔뜩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유수진입니다. 어쩌다보니 일주일동안 제 소개를 정식으로 드리지 못해서 제 소개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저는 홍보 담당자로 입사했고..."


내 소개를 듣는 직원 분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개발팀 쪽을 보고 거의 울 뻔했다. 아직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 없는 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실수를 한 게 틀림없었다. 말이 길어져 귀찮으신 게 분명했다!


"수진님 환영해요. 다들 많이 챙겨주세요."


그 후 나는 모든 직원 분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스타트업인만큼 형식적인 업무 절차보다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젊은 연령층이 많아 분위기도 부드럽고 자유로웠다. 회사에 적응이 될수록 내가 일주일 내내 하지 못해 끙끙 앓았던 자기소개는 형식적인 업무 절차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은 후 카페에서 가위바위보로 커피를 쏠 사람을 정하거나(늘 같은 사람이 걸리는 게 재미 포인트) 동료가 가진 문제를 나몰라라 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 도움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미 단단한 팀이 되어 있었다.


얼마 후, 내가 자기소개를 할 때 표정이 좋지 않았던 개발자 분과도 허물없이 친해졌다. 그날 왜 표정이 좋지 않으셨냐고 조심스레 여쭤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회사에서 잔뜩 얼어붙은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신 참 좋은 분이셨는데, 그날 내가 본 표정은 자기소개를 못해 안달난 형식적인 내 마음이 만들어낸 표정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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