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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02. 2019

반바지 입고 출근해도 되나요?

#16. 출근 복장의 적정선에 대하여

장래희망은 회사원 16.


“저 혹시... 회사에 반바지 입고 출근해도 되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은 그날의 내 옷차림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을까. 사내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외부 관계자 분이 주 1회 내근을 하게 되었고, 곧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 옷차림이 신경 쓰이셨던 모양이다. 이런 질문과 고민을 받아본 지가 언제였던가. 우리 회사는 옷차림이 자유로운 편으로, 미팅이나 행사가 있지 않다면 입지 못할 옷은 거의 없었다.


개발자 분들이 슬리퍼를 신거나 모자를 쓰고 출근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다.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를 차려입고 첫 출근한 날, 대표님께서 “편하게 입고 오셔도 되는데.”라고 하신 말씀이 어느 정도로 편해도 되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홍보 담당자로서 외부 미팅이나 갑작스럽게 기자를 대면할 일이 잦았으므로 기본적인 부분은 신경 쓰는 편이었다. 첫 기자 미팅이 있던 날엔 재킷을 챙겨 입지 못해 아침부터 혼자 끙끙 앓았는데, 막상 미팅에 가보니 재킷을 입은 분이 아무도 없어 속으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항상 비즈니스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친구들은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하루 종일 불편한 옷을 입고 일을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출근용과 평상복을 따로 구입해야 하니 돈이 두 배 이상으로 드는 것도 문제였다.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하려고 만나면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신은 친구는 직장인, 초록색 반스 운동화를 신은 나는 학생이나 백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편한 옷차림은 일의 집중과 관련이 깊다. 하루는 (살이 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몇 날 며칠 못 버린) 꽉 조이는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가 컴퓨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이 경우는 내 고집에서 비롯된 불편함이었지만, 만약 사내 규정 때문에 매일 불편한 옷을 입고 앉아서 개발을 하거나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 업무에 집중을 하기가 많이 어려울 것이다. 외부인을 대면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복장 규정을 굳이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느 날, 회사에 한 분이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아슬아슬한 길이라 자꾸만 눈길이 갔다. 회사에서 허용된 자유로운 옷차림이 다소 잘못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꼰대가 된 것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군사 정권 시절의 미니스커트 단속도 아니고 어떤 기준으로 옳다, 옳지 않다를 판단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보는 사람보다 본인이 더 불편해 보였고, 그것은 곧 업무 집중에 적합한 복장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유로운 옷차림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출근 복장의 적정선은 애매하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되냐는 질문에 “네, 그럼요”라고 말씀드렸지만, 반바지의 길이는 어느 정도까지가 좋을지, 쪼리를 신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선은 옷을 입은 사람과 옷차림을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꽉 조이는 바지를 내다 버리는 게 먼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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