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안 변해’라는 문제

by 유수진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재택 기간 중 <비밀의숲> 시즌1을 정주행 했다. 배우 조승우 님과 배두나 님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16화까지 다 보고 나서 넷플릭스를 종료하는 순간, 기억에 밟히는 사람은 배우 이준혁 님이 연기한 '서동재'였다. 서동재는 열등감을 가진 비리 검사로, 드라마 내내 악과 선 사이에서 애매한 자리를 위치했다. 자신의 뒤를 밟는 후배의 목을 졸라 거의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면서, 죄책감에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다. 검찰청에서 살아남으려 검은손에 휘둘리며 가진 아부를 다 떨지만, 검사장이 제 눈 앞에서 자살하며 마지막 유언으로 '너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라고 하자 다시금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진다.


<비밀의숲> 서동재 역

잠시 기대했다. 서동재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마지막화에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새로운 비리를 만들 궁리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어떤 이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이 부분만 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라는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고. 지인들과 이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마다 늘 불꽃이 튀긴다. 그만큼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린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대학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서른이 넘어가면서 우리 둘이 성격이 바뀐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는 대학시절 외부 활동을 무척 좋아했고, 나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집순이였다.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떠드는 일들이 그 당시 나에겐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대학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친구의 눈에 내가 얼마나 꽉 막히고 재미없게 보였을까. 그런데 서른이 넘어간 후부터 친구는 외부 활동을 즐기지 않았고, 반대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외부 모임에 나갔다.


나는 변했을까? 10년 전에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10년이 흐른 후 지금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는다. 그런데 완전히 변화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에 가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래서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보다는 '사람은 쉽게 안 변해'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겨우 한 걸음 밖으로 내디디며 아주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나처럼,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이 한 걸음이 두 걸음을 만들고 세 걸음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된다는 것.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내가 만든 틀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20대 내내 꽤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터운 틀을 가진 사람이구나. 한동안 그 틀을 미워하고 증오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 단단한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틀을 조금씩 깎아가며 바깥공기가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결심이 들었고, 친구가 보기에도 변화가 느껴질 만큼 20대와는 다른 30대의 내가 되었다.


만약 친구가 대학시절에 그런 내 모습을 답답히 여기고, 억지로 모임에 끌고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더 일찍 바깥 활동에 재미를 붙였을 수도 있고, 훨씬 더 두터운 틀 안으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가 서로의 모습을 바꾸려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모습을 존중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닮아왔다는 것이다.


서동재는 고쳐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지금 방영하고 있는 <비밀의숲> 시즌2를 봐야 알겠지만, 그의 작은 한 걸음에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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