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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02. 2020

‘사람은 안 변해’라는 문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재택 기간  <비밀의숲> 시즌1 정주행 했다. 배우 조승우 님과 배두나 님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16화까지  보고 나서 넷플릭스를 종료하는 순간, 기억에 밟히는 사람은 배우 이준혁 님이 연기한 '서동재'였다. 서동재는 열등감을 가진 비리 검사로, 드라마 내내 악과  사이에서 애매한 자리를 위치했다. 자신의 뒤를 밟는 후배의 목을 졸라 거의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면서, 죄책감에 밤잠을  이루는 사람이다. 검찰청에서 살아남으려 검은손에 휘둘리며 가진 아부를  떨지만, 검사장이   앞에서 자살하며 마지막 유언으로 '너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라고 하자 다시금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진다.


<비밀의숲> 서동재 역

잠시 기대했다. 서동재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마지막화에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새로운 비리를 만들 궁리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어떤 이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이 부분만 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라는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고. 지인들과 이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마다 늘 불꽃이 튀긴다. 그만큼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린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대학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서른이 넘어가면서 우리 둘이 성격이 바뀐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는 대학시절 외부 활동을 무척 좋아했고, 나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집순이였다.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떠드는 일들이 그 당시 나에겐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대학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친구의 눈에 내가 얼마나 꽉 막히고 재미없게 보였을까. 그런데 서른이 넘어간 후부터 친구는 외부 활동을 즐기지 않았고, 반대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외부 모임에 나갔다.


나는 변했을까? 10년 전에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10년이 흐른 후 지금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는다. 그런데 완전히 변화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에 가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래서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보다는 '사람은 쉽게 안 변해'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겨우 한 걸음 밖으로 내디디며 아주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나처럼,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이 한 걸음이 두 걸음을 만들고 세 걸음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된다는 것.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내가 만든 틀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20대 내내 꽤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터운 틀을 가진 사람이구나. 한동안 그 틀을 미워하고 증오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 단단한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틀을 조금씩 깎아가며 바깥공기가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결심이 들었고, 친구가 보기에도 변화가 느껴질 만큼 20대와는 다른 30대의 내가 되었다.


만약 친구가 대학시절에 그런 내 모습을 답답히 여기고, 억지로 모임에 끌고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더 일찍 바깥 활동에 재미를 붙였을 수도 있고, 훨씬 더 두터운 틀 안으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가 서로의 모습을 바꾸려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모습을 존중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닮아왔다는 것이다. 


서동재는 고쳐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지금 방영하고 있는 <비밀의숲> 시즌2를 봐야 알겠지만, 그의 작은 한 걸음에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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