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준비하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출간 준비하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원고를 투고한 지 약 7개월 만에 동일한 제목으로 이번 달에 에세이를 출간합니다. 홍익출판사 박지영 편집자님과 함께 최종 원고를 수정하고, 목차를 조정하고, 제목을 결정하고,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는 등 정신없이 막바지 작업을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퇴사 시기와 겹쳐 괜히 더 불안하고 어딘가 더 힘들었던 이주일이 지났네요. 지금은 모든 결정을 마친 후 강원도 속초에 내려와 오션뷰 펜션에 자리를 잡고 새로 구입한 아이패드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2인용 침대를 차지하고 앉아 몇 인분의 바다인지 모를 바다를 보고 있으니 이제야 약간 실감이 납니다. 며칠 뒤 제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이요.
이 에세이는 공식적으로 출판되는 나의 첫 책입니다. 햇병아리 작가로서 독자님들을 만날 날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나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작가’라는 두 글자의 타이틀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 알갱이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지친 몸을 뉘이는 방구석이 아니라 보고 또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잔한 바다 앞에서요.
한 자세로 앉은 지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허리가 뻐근해져 오지만 희미한 바다 끝선처럼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오래 전부터 모아왔던 생각의 파편들이 조금씩 한 덩어리로 묶이는 것 같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책을 내는 이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포함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너’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래요, 나는 솔직히 나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좋아 죽겠을 때보다는 미워 죽겠을 때 더 많이 썼고, 행복해 죽겠을 때보다는 힘들어 죽겠을 때 더 많이 썼습니다. 윙윙 소리는 나는데 날파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잡힐 때까지 파리채를 들고 달려드는 것처럼, 마음 어딘가가 망가진 것 같은데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글로 쓰고 또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위태로운 생각을 마음 속에만 가두는 것이며, 그 마음을 꺼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글쓰기라는 것을요. 2017년부터 공개적으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아무에게나’ 썼습니다. 끊어내지 못할 관계에 대한 미운 감정,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은 마음 속에 혼자 갖고 있을 때보다 확실히 가벼워졌고, 덜 위험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붙잡을 손잡이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그것은 글쓰기였고, 누군가에게도 이 방법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손잡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잡이를 건네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글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 단단한 손잡이가 될 수 있고, 흔들리는 마음을 글로 써내는 우리는 덜 흔들리고 덜 넘어질 거예요.
나의 17년지기 친구 진선이는 올해 5월 봄의 신부가 되고, 나는 첫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됩니다. 중학교 담장을 넘던 천방지축 우리가 인생에서 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결혼 준비와 바쁜 회사 일로 녹초가 된 진선이에게 나는 눈치도 없이 힘들고 고달팠던 지난 이주일간의 이야기를 쏟아 부었습니다. 내일 또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진선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자, 진선이에게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괜찮다고. 후회없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여행을 앞둔 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역시 진선이에게 꺼내놓길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이름 모를 당신에게 전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그 마음을 나누어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