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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02. 2018

그렇게 사람 볼 줄 몰라서 어떻게 살래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증명해주었다

꽤 사람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최근 그 자부심에 금이 갔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런 사람이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고 도대체 어디까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람 볼 줄 몰라서 험한 세상 코 안 베이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중학교에 입학하던 첫날,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잔뜩 멋을 부리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녀는  귀찮다는듯 주변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만화책만 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쟤와 친해질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누가 봐도 그녀의 겉모습은 불량 학생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지각하는데다가 책가방도 없이 슬리퍼를 찍찍 끌며 등교했다.  친구 진선이와 평생 가장 친하고, 가장 많이 다투고, 가장 많이 함께 여행을 다니게  줄은 그때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노래방이라면 끔찍이도 싫어하는 진선이는  때문에  동네 노래방을 억지로 끌려다녔고,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는 10 넘게 진선이를 기다려주었다. 정반대였던 우리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던 걸까?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진선이가 좋았다. 매번 내 생일을 잊어버리는 친구지만, 헐레벌떡 뛰어가서 선물을 사오거나 내 앞에서 급하게 생일 편지를 써주는 진선이가 좋았다. 여행을 가면 체력이 약한 나를 위해 내 가방까지 들어주고, 농담으로라도 강도를 만나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진선이가 좋았다.


첫인상 때문에 처음엔 거리를 두었다가도 결국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훨씬 더 많았다. 만나볼수록 그들은 진국이었고,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증명해주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한 사람이라는 것을.

진선이와 함께 한 남해 여행에서

이 글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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