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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07. 2018

다시는 그렇게 퇴사하지 말아야지

우리는 그저 들어왔다가 나가는 존재가 아니니까

"너 정말 실망이다"     


첫 회사에서 퇴사한다고 말했을 때, 팀장님은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지만,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팀장님은 나에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내 발로 들어간 회사에서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뭐가 실망스럽다는 건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퇴사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늘 같이 웃고 떠들던 팀장님은 그 후로 나를 알은체도 하지 않았고, 내가 업무적으로 말을 걸면 차갑게  '네', '아니오' 로만 대답했다. 화장실에 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따가운 눈초리에 얼굴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고문과도 같은 한 달의 시간을 버텨내면서 회사에 입사하기도 힘들지만 퇴사하기도 참 힘든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형벌과도 같았던 한 달이 끝날 무렵, 팀장님은 미안하셨는지 나를 따로 불러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퇴사한다고 하니까 배신감이 들었어."     


퇴사하기로 결정했을 때, 팀장님에게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번 큰마음을 먹으면 누구의 이야기도 잘 듣지 않는 터라 상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솔직히 팀장님과 그만큼의 마음을 나누지도 못했다. 반면 팀장님은 달랐던 것 같다. 팀장님은 팀장으로서 부하직원을 둔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기에 나에게 갖는 애정과 책임감이 남달랐을 것이고, 직원들과 함께 잘해보려는 마음이 크셨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기미도 없이 '퇴사'를 말하니 순간적으로 황당하고 화가 난 것이다.     


두 번째 회사에서의 퇴사도 그다지 평범하진 않았다. 내가 퇴사를 결정했을 무렵, 절친했던 동료가 먼저 퇴사 의견을 밝혔고 회사에서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퇴사 절차를 밟아주지 않았다. 부장님은 팀원들을 소집해 퇴사 의견을 밝힌 동료가 얼마나 무례한지에 대해 연설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부장님은 팀원들에게 혹시 할 얘기가 없는지 물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빠른 스피드로 손을 들고 말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회사생활 4년차에 접어들어 남는 자의 입장에서 수십 번의 퇴사를 겪고 나서야 퇴사도 하나의 이별인지라 쿨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걸 알게 됐다. 떠나는 자보다 남는 자가 더 아쉽기 마련인데, 팀원이었던 사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하니 얼마나 야속하겠는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척 그 아쉬움을 공감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당장 떠나는 것에 급급하기보단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리고 어렸던 나는 그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이었다. 퇴사도 하나의 이별이라면 내 이별 방식은 너무 차갑고 극도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퇴사하고 싶지 않다. 나의 퇴사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길지언정 배신감이나 허망함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저 들어왔다가 나가는 존재가 아니니까. 아무리 미워도 같이 일하는 팀원이었고, 때론 같이 밥을 먹는 가족이었으며, 티격태격 다투는 친구였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동행자였으니까. 들어올 때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나갈 순 없어도 다시는 그렇게 퇴사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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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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