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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15. 2019

신입사원의 소심한 쌩쇼

#6. 쌩쇼는 하되 같은 쌩쇼는 말자고

장래희망은 회사원 6편.


입사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상사와 동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큰 캐릭터 조형물을 차에 욱여 넣고 강원도로 출장을 갔다. 한 학교에서 교사 연수가 있었고 우리는 연수가 진행되는 동안 교사 분들을 돕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의 일을 했다.


연수를 마친 후, 우리가 가져간 캐릭터 조형물과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 촬영은 홍보 담당자인 내가 맡았다. DSLR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전부터 여러 번 연습을 해두었다. 그런데 시간에 쫓기고 정신없이 여러 번 촬영을 하다보니 체크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셔터를 눌러버렸다. 팀끼리 개별 촬영을 하고 전체 대상으로도 여러 번 찍으니 팔이 덜덜 떨렸다. 카메라가 보기보다 많이 무거웠다.


관계자 분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동안 얼른 카메라부터 꺼내보았다. 촬영한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말문이 막혀버렸다. 구도도 엉망이고 인터뷰에 쓸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사진이 엉망이에요...”

“괜찮아, 괜찮아!”


상사 분이 괜찮다고 위로하셨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실수였다. 저녁 식사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진을 보내줄 테니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강원도까지 와서 온갖 고생을 하고 남는 거라곤 사진 뿐인데, 사진이 모두 엉망이라니 말도 안됐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몇 개의 사진을 살려냈고 무탈하게 인터뷰에 사용했다. 아찔한 그 실수 후로도 홍보 담당자로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침착하게 천천히 사진을 찍었고, 최대한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다. 촬영 기술이 좋지 않으니 일단 많이 찍고 보는 게 최고였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촬영의 감을 익혀갔다. 100명에 가까운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다 보이도록, 딱딱하게 굳은 사람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찍힐 수 있도록 다양한 포즈를 요구했다. 몇몇 분들은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했지만, 그때를 놓치면 다신 건질 수 없는 사진이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 했다.


하도 많이 찍어서 대표 사진을 고르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러한 노력 끝에 인터뷰나 보도자료 맨 위에 ‘떡’ 하고 들어가는 대표 사진을 보면 뿌듯했다. “수진님, 이 사진 좋은데요?”라는 말을 들으면 ‘아, 내가 제대로 했구나’ 싶었다.


그날의 내 소심한 쌩쇼는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 쌩쇼 덕분에 한 가지는 제대로 배웠다. 쌩쇼는 하되 같은 쌩쇼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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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9년차 마케터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 일글레 � 구독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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