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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ug 17. 2019

내 인생은 내가 망쳤다

그러니까 살리는 것도 내가 살린다  

영화 <돈 워리>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망쳤다.



'존'은 알콜 중독자다. 생모에게 버려져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상처 때문에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한 파티에서 만난 남자 '덱스터'와 미친듯이 술을 마신 뒤, 덱스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사고로 휠체어 신세가 된다. 생모에게 버림받은 상처 때문에, 철없는 어린 시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는 단 한시도 술없이 살 수 없다. 간병인의 보살핌이 없으면 술을 마시지도 못한다. 소변 주머니가 넘쳐 흘러 온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도 스스로 몸을 씻을 수조차 없는 막막한 현실. 사실 그가 이렇게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그의 말처럼 생모의 무책임함과 철없는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잠깐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버림받지 않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잠깐의 실수가 반드시 하반신 마비라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니까.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도니'가 존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런 사고를 겪었는데?"

"덱스터가 술을 마시고 운전했기 때문이지!"


"너는 왜 덱스터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나도 너무 술에 취해있었다고!"


"너는 왜 늘 술에 취해 있었는데?"

"생모에게 버려지는 슬픔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나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어!"


늘 약속에 늦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 '버스가 너무 늦게 와서', '배가 아파서', '갑자기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서' 등 갖가지 변명을 돌려 썼고, 언제부턴가는 래퍼토리가 다 떨어졌는지 변명의 '그럴듯함'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 역시 친구가 한 수많은 변명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떤 변명을 하든 친구가 늦은 이유는 단 하나,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버스가 너무 늦게 왔건, 배가 아팠건, 엄마가 갑자기 심부름을 시켰건 약속 장소에 늦은 당사자는 친구였고, 그러한 상황을 만든 당사자도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살리는 것도

내가 살린다.



존의 억울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버린 생모,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 덱스터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모를 평생 미워하며 알콜 중독자로 살아온 자신, 음주 운전자의 옆 좌석에 올라탄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다시 생모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덱스터를 만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알콜중독자가 되어 인생을 망친 것은 자신이지만 그러한 인생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니까.


밥 먹듯이 약속 시간에 늦던 친구는 이제 늦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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