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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21. 2019

일로 만난 사이끼리 민속촌에 가면

#6. 회사 바깥의 모습을 아주 조금은 본 것 같은 하루

지난주 금요일, 우리 회사는 민속촌에 다녀왔다. 피플팀은 전 직원을 총 여덟 조로 구성해 함께 다닐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나는 대표님과 같은 조였다. 그것부터 눈에 띈 건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인 것 같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동료들이 몇 분 계신데, 어쩌다 보니 내가 속한 조에 그런 분들이 많이 계셨다. 이날을 계기로 인사도 나누고 대화도 해볼 수 있다는 건 좋은 기회였으나, 마치 초등학교 첫 소풍 전날 누구와 같이 앉게 될까 고민하는 아이처럼 긴장 반 설렘 반이었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자유시간이었다. 나는 우리 조의 한 개발자 분과 인사를 나눈 후 서로의 손목에 자유이용권 티켓을 채워주었다. 입사한 지 얼마나 되셨던가요, 민속촌엔 와보신 적 있으신가요, 회사 밖에선 보통 뭘 하시나요 등 질문을 주고받다 보니 금세 원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익숙해졌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회사 안에서 하는 행동과 회사 밖에서 하는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 소재, 말투, 유머 수위 등을 동료들끼리 고스란히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의에 어긋나거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나쁠 것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료로부터 "수진님은 회사 밖에서 친구들이랑 어떻게 지낼지 눈에 선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 밖에서는 어떤 사람일지 잘 안 그려지는 사람들도 있다며.


문득 옛 동료 한 명이 떠올랐다. 그 동료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 멈추고 "아, 아니에요"라며 하려던 말을 자주 넘겨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일로 만난 사이'에는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인가 보다, 하며 괜히 내가 먼저 얼른 대화의 흐름을 바꿨다. 내가 너무 공과 사 구분 없이 모든 걸 다 꺼내 보여준 건가 싶고, 일로 만난 사이에서 지켜야 할 매너를 모르고 산 건가 싶은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만약 그 동료를 회사 밖에서 만났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니 도통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드라마앤컴퍼니 in 민속촌_191018


우리 조는 천천히 민속촌 안을 거닐며 곤장 맞는 모습도 보고, 오미자차도 마셨는데 시간을 보니 웬걸, 열두 시밖에 안됐다.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 장터에 자리를 잡고 해물파전, 도토리묵, 불고기 비빔밥, 장국밥, 꼬치 등 시킬 수 있는 음식은 다 시켰다. 시킨 음식의 종류만큼 우리의 대화 주제도 점점 넓어졌는데, 대표님은 한 주동안 겨우 열 시간밖에 못 주무셨다고 했다. 강철체력이라는 말은 종종 들어왔지만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아침에 아들이 깨우면 벌떡 일어나신다는 말에, 새삼 대표님도 회사 밖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한 직원의 결혼식에서는 아들에게 벨트를 붙잡힌 채 끌려다니셨다고.


겨우 열두 시였던 시간은 어느새 세시가 되었다. 옹기 캔들을 만들고, 제기차기 시합을 하고 나자 녹초가 되었다. 저녁 회식을 위해 전 직원이 한 고깃집으로 모였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앉았다. 우린 모두 고기 구울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시끌벅적한 주변 테이블과 달리 별 말없이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었다. 한 분은 그런 우리가 마치 동네 친구 같다고 했다. 일로 만난 사이끼리 불판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낯선 일이니까. 고기를 다 먹고 나자 그제야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연기로 가득한 고깃집 안 공기는 점점 더 텁텁해져 갔다.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요?"


우린 잠시 캄캄한 민속촌 바깥길을 걸었다. 딱 한 번 밥 먹어본 사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회사 동료들과 하루 종일 민속촌에 있었다는 게 좀 신기하신 모양이다. 일로 만난 동료들의 회사 바깥의 모습을 아주 조금은, 본 것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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