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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28. 2019

회사 책장에 내가 쓴 에세이가 꽂혀있다

#7. 선릉역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올해 5월, 퇴사와 동시에 에세이를 한 권 출간했다. 5월은 나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던 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쓴 글이 한 권의 모양을 갖춰 세상에 나온 것은 유일하게도 '온전한 기쁨'이었다.

 

주말마다 '회사 가기 싫다'를 입에 달고 살았어도 퇴사가 온전한 기쁨이 될 수는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티 내진 않았지만 정든 동료들, 손에 익은 업무들을 떠나보낼 땐 사실 ‘잘 될 거야’라는 자신감보다는 ‘이제 어쩌지’ 싶은 찌질한 두려움이 잠식했다.

 

에세이의 상당 부분이 회사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 만큼 내 삶에 있어 회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참으로 묵직했다. 회사가 내 삶의 전부여서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성장할 나에 대한 기대, 동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컸기 때문이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와 글을 쓸 때면 가장 먼저 회사 이야기부터 떠올랐고, 에세이의 네 파트 중 한 파트를 회사 이야기로만 묶어내도 더 쓸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던 중, 얼마나 많이 좌절했는지 모른다. 회사를 다닐 땐 내가 어렵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며 자아도취에 빠졌었는데 막상 글로 적고 보니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잘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나, 하며 풀이 죽을 때마다 에세이 출간 경험은 힘 좀 쓰는 오빠를 둔 것처럼 든든한 백이 되어 주었다. 슬라이드 50장으로 채워진 포트폴리오 가장 하단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출간' 한 줄을 채워 넣으며 대표님이 꼭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리멤버로 이직하고 첫 출근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기소개 메일을 써야 했는데, 나란 사람을 소개할 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안양에 산다는 것, 이전에 교육 재단에서 마케팅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을 썼는데도 길이가 너무 짧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내가 쓴 에세이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러려고 책 제목을 길게 정한 건 아닌데, 열일곱 글자로 제목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앤컴퍼니 전직원에게 발송되는 자기 소개 메일

얼마 후, 피플팀에서 내 에세이를 두 권 구입해 전 직원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책장에 비치해 주셨다. 혹시나 하고 책장에 가봤더니 두 권이 모두 없었다. 벌써 두 분이나 내 책을 보고 계시다는 뜻이었다.


드라마앤컴퍼니 책장에 꽂혀있는 내 에세이

어쩌다 보니 퇴사와 맞물려 세상에 나왔던 에세이가 현재 회사의 책장에 꽂혀 있다.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 메일을 받고, 셀 수 없이 많은 퇴고의 과정을 거쳐, 검색창에서 내 책이 검색되는 순간까지 온전히 기쁜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들의 결실을 현재의 동료 분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다는 게 얼떨떨하면서도 솔직히 정말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 부끄럽다고만 말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지난 이야기를 담은 책과 함께 선릉역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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