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Nov 10. 2019

나의 안전한 속초 바다에게

발신자도 수신자도 없는 편지에 대한 답장

반년만에 다시 속초를 찾았다. 두 좌석 남은 고속버스를 겨우 예매할 때부터 예상했지만, 도로는 단풍 구경을 가는 차들로 꽉 막혔다. 다행히 속초는 고된 한 주를 보낸 것도 잊을 만큼 기막힌 날씨로 맞이했다. 피곤함은 잠시 잊고 가을을 만끽하기로 했다.


늦은 밤, 숙소로 들어와 퉁퉁 부은 다리를 침대에 올리고 잠에 들려할 때, 문득 밤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당연히 이를 귀찮게 여길 동행자는 더 이상 동행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혼자 다녀오겠노라 했다.


"조심히 다녀와."


대낮이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고 있던 잠옷 바지에 모자를 눌러쓰고 밖에 나갔다. 좋아하는 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까맣고 거친 밤바다가 마음에 들었다. 최대한 파도 앞에 가까이 앉아 요즘 푹 빠져있는 노래 한 곡을 플레이했다. 일정한 리듬의 드럼 연주에 맞춰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그래, 나는 이 안전함을 느끼려고 이곳에 왔나 보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들어줄 이를 찾아서.


사실은 얼마 전 발신자도 수신자도 적히지 않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신자와 수신자를 예상할 수 있었던 건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촉이었다. 언젠가 한 점쟁이가 나에게 '끼'가 있다며, 해로운 것을 피해 가는 데 잘 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믿지는 않지만, 가끔 나에게 찾아오는 촉은 믿는 편이다.


믿고 싶었던 이유는, 편지에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꼭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몇 번이고 되감아 읽었다. 이 말을 조금 더 일찍 들었더라면,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몇 번, 내 이야기를 꺼내려고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입 언저리에서 말이 막혔다.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 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상황이나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뒤늦게 알았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던 것임을. 어쨌든 편지를 받았으니 답장을 쓰고 싶었는데, 보낼 곳이 없어 칠흑 같은 밤바다에 스리슬쩍 묻어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옆의 남자 무리들이 점점 시끄러워졌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폭죽을 쏘고 있었고,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폭죽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엉덩이를 털고 숙소로 들어왔다.


안전함은 고정적이지 않다. 안전했던 것이 불안전해지기도 하고, 불안전했던 것이 안전해지기도 한다. 안전하면 느슨해지고 불안전하면 팽팽해진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한결 명확해진다. 왜 결국 터져버렸는지.


답장을 원했다면 발신자도, 수신자도 적지 않은 채 편지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편지는 나에게 오지 말았어야 했다. 폭죽 잔해가 남은 밤바다만이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내 얘기를 기억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