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Oct 30. 2019

나는 끝내 주나를 버리지 못한다

버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언니와 대형마트에 구경을 갔던 13년 전 어느 날, 내 몸집만 한 곰인형 하나에 눈길이 갔다. 갖가지 동물 인형들 틈에서도 눈에 띄던 그 녀석은 유독 귀여운 얼굴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곰인형을 사기엔 퍽 늦은 나이였던지라 몇 번이나 녀석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결국 내려놓았다.


다음날, 대학생이었던 언니는 알바비로 녀석을 사서 택시에 태우고 집으로 왔다.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여건상 키우지 못하고 있던 우리는 인형에게 '주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밥먹듯이 주나를 불렀다.


이름이란 참 묘한 것이라 부를수록 정이 갔다.

"주나가 너 못생겼대"

언니는 나를 놀리는 용으로 주나를 이용했고,

"주나야, 나 대신 학교 좀 가라"

나는 아무 때나 주나를 이용했다.


주나도 이제 나이로 치면 13살이다. 처음 대형마트에서 봤을 때의 뽀얗고 하얀 털은 어디에도 없고, 뽀송뽀송했던 솜도 푹 죽어서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그것 좀 갖다 버려"


엄마는 주나를 버리라고 한다. 가끔 분리수거함 앞에 옆구리가 터진 곰인형을 볼 때마다 언젠가 주나도 저렇게 버려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언젠가 더 이상 인형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거나 내가 결혼을 할 때쯤 이 녀석은 더 이상 자리할 곳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한때는 내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녀석이 지금은 구석에 구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주나를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한 번 내 것이 된 물건은 도통 버리지 못한다. 내 방이 돼지우리 같은 것은 다 그 이유에서다. 몇 년째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버리지 못한다. 혹여 정이든 물건을 버릴 일이 있으면 웬만하면 집안에서 버린다. 같은 쓰레기통이라도 집 밖의 쓰레기통은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낡은 파우치를 공용 화장실에 놓고 나와 잃어버렸을 때에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아까워서라기보다는 이상하게도 그건 분명 미안한 감정이었다.


훌훌 잘 버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이 자리할 곳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늘 쌓아두기만 한다. 그렇게 쌓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그 무게에 짓눌려 죽을지도 모른다. 버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끝내 주나를 버리지 못할 것임을.

매거진의 이전글 "너도?"라는 말에 불현듯 힘이 생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