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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Nov 26. 2019

언니 하나쯤 있었으면

이렇게 나도 조금씩 언니가 되어 가겠지

언니에게


얼마 전에 내 SNS로 메시지가 한 통이 왔어. 내 책을 잘 읽었다고, 다음 책도 출간해달라는 고마운 내용이었어. 그리고 마지막에 p.s를 덧붙였는데, 부자 언니 유수진 씨보다 나만 아는 언니 같은 유수진이 더 좋다지 뭐야.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 당연스럽게, 언니라고 불리는 게.


언니도 알다시피 나는 태어나자마자   터울 언니가 있었어. 우리 언니는 욕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야. 싸우기도 엄청 많이 싸웠지. 그래도 주변 친구들은 내가 언니가 있다고 하면 다들 부럽다고 했어. 나는 듬직한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늦은 밤에 혹여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부리나케 데리러 나오는 오빠. 그런데 내가 꿈꾸는 그런 오빠는 없대. 밤새 게임하면서 라면 심부름만 시키는 오빠만 있다고.


말로는 싫다 하면서도 나도 내심 언니가 있는  좋았어.  시간이고 같이 쇼핑을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갈  있고, 수다를 떨고 싶을  언제든 같이 수다를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도 거의 매일 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아. 바쁘게 사는 친구들에게는 점점 보내기가 꺼려지는, 아주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말이야. 내겐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때로는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기도 . 유치하지만, 구명조끼가 하나밖에 없다면   개를 내어줄  있겠다는 생각을  적도 있으니까.


언니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언니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보다 더 편하고, 친구보다 더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늘 내 걱정만 하는 엄마한테는 건강검진 결과를 숨기게 되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친구들에게는 더 이상 일상의 작은 투정들을 부리기가 힘들어지거든. 이 모든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존재, 그게 언니야.


누구에게나 언니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어. 언니를 가져보면 알 거야.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같이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어느새 나에게도 언니라고 부르는 몇몇 동생들이 생겼어. 아직은 그 친구들에게 좋은 언니가 되어줄 자신은 없어. 앞으로도 나는 철없는 동생에 불과할 것 같거든.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언니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질 테니까. 어차피 언니가 될 거라면 기왕이면 좋은 언니가 되는 게 낫잖아.


메시지에는 정말 고맙다고 답장을 했어. 그분의 응원처럼  좋은 다음 책을 내는 '언니' 되고 싶더라고. 이렇게 나도 조금씩 언니가 되어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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