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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r 05. 2020

사랑받지 못할 동백이는 없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상처 받은 사람처럼 잔뜩 가드를 올리고 있는 동백이가 거슬렸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져버리는 용식이도 불편했다. 아마 동백이도, 용식의 엄마도, 동네 사람들도, 용식이가 잠깐 저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백이는 고아로 자란 데다가 지금은 술집을 운영하는 애 딸린 미혼모니까. 낳아준 엄마에게, 남편이 될 뻔한 남자에게 버려진 것도 모자라, 살인자에게까지 쫓기는 신세의 동백이는 ‘팔자 센 년’으로 불렸다. 서른 넷, 팔자 센 년에게 시골 촌놈은 맹목적으로 사랑을 바쳤다.


동백의 남편이 될 뻔했던 종렬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알면 뭘 알았겠냐는 변명이 내 나이를 먹고 보니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종렬은 당시에 동백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필구를 배에 품은 동백이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종렬이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할 것임을. 동백이는 자신의 발로 종렬의 집에서 나왔지만, 그녀를 밀어낸 건 종렬이었다. 그녀가 만나본 남자는 종렬이 전부였기 때문이었을까. 용식의 사랑도 결국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하자, 용식은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동백씨 저 만나봤어요? 제가 동백씨 행복해 죽게 만들 수 있다고요”


헛웃음 나게 하던 그 말이, 날마다 쌓이면 어느 순간 믿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힘이 생긴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꽃은 힘을 낼 듯하다가도, 뿌리 깊은 습관이 쉽게 꺾이지 않는다. 용식이 조금이라도 마음이 변할 듯 보이면, 지레 겁을 먹고 “거 봐요, 애 있는 여자 어렵죠?”하며 그를 놓아줄 채비를 한다. 동백이가 놓아주던 안 놓아주던 사실 용식은 동백이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다. 몇 번의 믿음이 쌓이자 동백이는 깨닫는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닮은 모습은 거슬리는 법이고, 의심되는 것은 불편한 법이다. 믿었던 것에 배신당하는 상처가 두려웠던 나는, 동백이의 말처럼 ‘불안하면 더 꼭 붙들면 되는데 확인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래 저렇게 예뻤나싶게 점점 예뻐지는 동백이를 보면서, 빛을 내는 사람이 되는 두 가지 방법을 배웠다. 첫째,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전에 스스로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 둘째, 함께 있으면 내가 뭐라도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


동백이가 예뻐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랑받지 못한 꽃도, 사랑받지 못할 꽃도 없다는 걸 아는 꽃은 있는 그대로 빛을 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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