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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Feb 02. 2020

운전대를 잡으면 섹시해질 줄 알았지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옆자리에 앉으면 미안한 사람이 되곤 했다. 피곤하죠, 조심하세요, 제가 먹여줄까요, 하며 운전자를 챙기는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핸들 위에  손만 시크하게 올려놓거나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 사이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모습이 괜히 어른스러워 보였다. 마치  평생 겪어볼  없는 '의사'라는 직업을 막연히 동경하는  같았다. 


해본 적이 없어서다. 운전이 어떤 일인지 잘 모르니까, 우선 미안해하고 보는 거다. 운전자도 무뎌진 건지 아니면 예의상 인사치레로 받는 건진 몰라도 내심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툭 까놓고 '운전'을 '전문적 노동'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운전자와 옆좌석의 역할은 그렇게 고정이 되어갔다.


운전자가 되어보니 운전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초보라 긴장을 많이 하기도 하거니와 여기저기 눈알 돌려야 할 곳도 많고, 브레이크를 밟은 다리에도 자꾸만 있는 힘껏 힘이 들어간다. 오른쪽에 집중하면 왼쪽에서 사람이 튀어나오고, 왼쪽에 집중하면 오른쪽에서 차가 튀어나온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예민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옆좌석에 앉은 사람은 평온한 일상 중 한순간일 뿐이라 자꾸 말을 시키고 이래라저래라 한다. ‘운전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알아?’라는 말이  끝을 친다.


막상 해보니 운전은 '수술하는 의사' 아니라, 몸살을 앓는 나를 ‘간병하는 엄마' 가깝다. 소수의 사람만 가진 매우 전문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엄마는 밤새 몸살을 앓는 나를 위해 온몸을 주무르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내가 다시 편히 잠에 들도록 했다. 운전자가 나를 위해 공짜로 수술을 해준다고 생각했을 땐 옆좌석에 앉는 일이 미안했는데, 나를 위해 간병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미안한 게 아니라 고마운 일이었다. 수술이 끝나면 비용이 청구되지만, 엄마의 간병은 그저 고마움을 남길뿐이다.


차를 사길 참 잘했다.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았더라면,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는 일이 메스를 잡는  아니라 수건에 물을 적시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을 테니. 누군가를 위해 운전대를 잡으면 섹시한 사람이   알았는데 뿌듯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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