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적당함이란 게 있던가
<글 까짓 거>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멤버 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어야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더 좋은 말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글쓰기 모임을 앞둔 어느 날, 어떤 분이 내게 물었다.
"글쓰기 모임의 만족도 점수가 얼마나 나왔으면 좋겠어요?"
5점 만점에 최소한 4점 이상이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리더로서 처음 연 모임이니 모든 멤버 분들이 이 시간에 최상의 만족을 느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다. 그러나 내게 질문한 분은 턱없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너무 과한 기대라는 뜻.
우리는 격주 일요일마다 모여 세 시간 동안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가고, 각자의 글을 쓸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름 꾸준히 나에 대해 글을 써왔으니 그 경험을 나누기만 하면 되겠지, 했는데 입 안에서 맴도는 생각이 좀처럼 예쁘게 꺼내지지 않았다.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글쓰기와 조금 다릅니다. 글쓰기에 대해 말하려면 자신과 동료 작가들이 글 쓰는 과정을 면밀하게 성찰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것은 글쓰기와 또 다른 과제입니다.
- 박민영,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에서
그러고 보니 글쓰기에 대해 글은 써봤어도 말한 적은 없었다. 원래 말하기가 좀 서툰 사람인데, 열네 개의 눈빛 앞에서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주제에 대해 말을 하려고 하니 더듬거릴 수밖에. 첫 번째 모임을 준비하면서는 대본을 쓰려고도 했다. 회사에서 종종 발표를 할 때에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말할 것을 미리 외워두는 습관이 있는데, 모임에서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세 시간 분량의 대본을 거의 다 썼을 때쯤, 대본 쓰기는 관뒀다. 이것은 발표가 아니다.
대신, 멤버 분들의 글쓰기를 세밀하게 관찰하기로 했다. 약 40분 정도 글을 쓰는 동안 그 과정을 흘깃 훔쳐봤다. "지금부터 40분 동안 쓰실게요"라고 말하자마자 잠깐 미소 섞인 한숨을 쉬시고는 다들 빠르게 집중 모드에 들어갔다. 타닥타닥, 토독토독, 타자기 소리만 가득하고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다른 분들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였다. 어느덧 40분이 흘러 시간이 다 됐다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 서둘러 마지막 문장을 다듬었다.
세 번째 모임을 준비하기 전, 가장 먼저 지난 시간에 멤버 분들이 쓴 글을 읽었다. 단순히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려면 한 분 한 분의 글쓰기를 더 바라보고 분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내 기대는 5점 만점에 5점이다. 과한 기대면 어떠랴. 어디 첫사랑에 적당함이란 게 있던가. ‘적당히’를 모르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