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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15. 2020

문자가 왔다, 번호는 1004

그날 나는 당구 큐대 앞에서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그날은 사랑의 매가 허용되었던 내 학창 시절 중 가장 센 매를 맞은 날이었다. 교복 블라우스를 치마 밖으로 빼 입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절, 유독 그것을 엄격히 통제하던 한 선생님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우리는 블라우스를 빼 입고 다니다가 멀리서 그 선생님이 보이면 얼른 치마 속으로 구겨 넣곤 했는데, 하루는 그만 딱 걸리고 말았다.


그는 당구 큐대로  엉덩이를 내려쳤다. 매를 맞으면서   번도 엄살을 부린 적이 없었는데, 당구 큐대로 여린 살을 맞는 것은 정말이지 무척 아팠다. 그래도   물고 '' 소리 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아픈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매를 맞은  그가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엉덩이   매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엄마와 언니 앞에서 엉덩이를 깠다. 엉덩이부터 허벅지  전체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엄마와 언니는 신고해야 하는  아니냐고 했다.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 요인이다. 말이 아니라 내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치유의 핵심이다. 자신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싫어하는 사람 앞에선 강해 보이려고 애썼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상처 받아도 상처 받지 않은 척. 가족들 앞에서나 시퍼렇게 멍든 허벅지를 내보였던 것처럼 나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해줄 사람에게만 내 약한 모습을 내비쳤다. 돈을 빼앗긴 날도 그랬다.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가방에 넣어두었던 3만 원이 없어졌다. 아침에 엄마가 잘 챙겨두라고 했던 돈이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말했다간 일이 커질 터였다. 한 남자 애가 입꼬리를 삐죽 올리고 웃고 있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실 문을 세게 걷어찼다. 친구들이 다독였지만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수업 종이 울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교실로 와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번호는 1004.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문자였다. 많이 속상하겠다고. 내가 3만 원을 구해와 보겠다고. 그 순간, 모든 분노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찔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 5년, 세월호 유가족 같은 극한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이런 시민들의 거대한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가 만들어낸 치유적 공기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었다고 느꼈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나는 그 1004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네가 1004지?'라고 묻지 않았다. 1004를 지켜주고 싶었다. 1004에게 기대고 싶었다. 내 옆에 1004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평생 트라우마가 될 뻔했던 그 사건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고 싶다고, 나 정말 너무 힘들다고 고백한다면 한 마디 말보단 안아주고 싶다. 나를 무척이나 신뢰한다는 뜻일테니. 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뜻일 테니. 뭐든 잘 해낼 수 있다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면 오히려 나를 티끌만큼도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겐 1004가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1004가 되어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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