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Apr 27. 2020

몇 백 알의 타이레놀을 삼킨 후에야

여자로서 겪는 한 달에 한 번의 고통이 지독하게 심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마디마디가 따로 분리되어 부러지는 것 같았다. 몸의 고통도, 마음의 고통도 잘 몰랐던 어느 때에는, 학교 급식판을 무작정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앞에 선 남자아이의 장난이 그 정도로 심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갑자기 뿜어져 나온 내 폭력성에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고 친구들 모두 그대로 얼어붙었다.


고통이 극에 달하는 30분 동안은 죽음의 고통이 이런 걸까 싶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특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딱딱하게 굳어 오므라들었다. 새벽에 갑자기 쓰러지는 나를 보고 엄마가 너무 놀라는 모습을 본 후로는, 가급적 혼자 방바닥을 구르고 내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무르며 참아내곤 했다. 옆에서 엄마가 내 몸을 주무르며 전전긍긍해하면 이상하게 더 마음 놓고 아플 수가 없었다. 어차피 30분 뒤면 사라질 고통이라고 되뇌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이런 일을 매달 겪다 보니 버스에서 눈물이 나오는 게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는 걸, 평소보다 짜증이 많이 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해도 '그날이니까' 최대한 조심하려고 애썼다. 나의 고통이 타인의 불편함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어느새부턴가 나는 나의 모든 고통을 절반으로 깎아내렸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니야, 지금 내 분노의 절반은 가짜야'라며 화를 삭였다. 더 이상 타인에게 그날의 짜증을 떠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헷갈렸다. 상대방이 잘못한 건지 아니면 내가 조금만 참으면 없던 일처럼 지나갈 잠깐의 고통인 건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는데,라고 밑밥을 까는 것부터 나는 내 고통의 반을 무시하고 들어갔다. 타인의 불편함이 먼저기에, 30분만 참으면 지나갈 내 고통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참았고, 웬만하면 한 번 더 말을 삼켰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한 시간 전에 타이레놀을 삼키면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완전히 고통에 익숙해진 후였다. 고통의 패턴을 익힌 덕분에 고통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몇 백 알의 타이레놀을 삼킨 후에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 고통에 이토록 객관적이었으면서 한 번도 내 고통을 진심으로 껴안아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날이어서, 라는 이유보다 그날이기 때문에 힘든 내가 먼저여야 했다.


언제나 그랬듯 고통은 없던 일처럼 사라졌다. 그날의 다툼도 고통과 함께 끝이 났다. 그날이어서 벌어진 다툼도, 내 고통을 짓밟을 만큼 지켜내야 할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러니 다시는 내 고통보다 타인의 불편함을 앞에 두지 말기를. 나의 고통에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내가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출퇴근길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