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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Sep 08. 2019

의자 밑바닥을 닦던 그때로

남들이 생각하는 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

여성 4인조 그룹 '핑클'은 어릴 적 최고의 우상이었다. 장기자랑을 할 일이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90년대 최고의 인기였던 '내 남자 친구에게'나 '영원한 사랑' 노래에 맞추어 춤을 췄고, 일명 '핑클빵' 안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모으느라 매일 슈퍼에 가 빵을 사 먹었다. 막연히 핑클 언니들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어린 날의 나는, 이제 그때의 언니들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를 먹었고, JTBC <캠핑클럽>으로 돌아온 핑클 언니들은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을 줄만 알았는데, 언니들이 기억하는 지난날은 어린 날의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지난 20년을 욕먹지 않기 위해 살아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언니들도 그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욕먹는 거, 그까짓 거 무섭지 않던 시절이 왜 없었겠는가. 장기자랑 때 춤을 준비하면서는 늘 내가 선두에 서서 동작을 만들었고,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효리 언니 역할을 맡겠다고 친구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친구들이 그런 나를 제멋대로라고 욕하진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오로지 핑클 언니들처럼 멋진 무대를 준비해서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목표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조직 내에서 미운털이 박히지 않고, 그룹 안에서 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뾰족한 성격상, 여기저기서 미운털도 많이 박혀봤지만 결국 그래 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을 자주 경험해본 뒤로 나도 모르게 나의 목표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더 많은 부분을 내어주고 있었다. 딱하게도.


고민을 털어놓던 중, 효리 언니는 남편 이상순 씨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부부가 함께 나무 의자를 만들고 있는데 이상순 씨가 잘 보이지도 않는 의자 밑바닥을 열심히 사포질 했다. 누가 본다고 그렇게 열심히 사포질을 하느냐 묻자 그는 "내가 알잖아"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찡하게 다가온 이유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장기자랑 무대를 본 친구들 중, 내가 효리 언니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알아본 친구는 과연 몇이나 됐을까. 단 3분 동안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춤 연습을 했다는 것을 과연 몇 명이나 알 수 있었을까. 무대 위에서 마지막 동작을 마친 순간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나와 친구들은 동시에 가슴이 터질듯한 말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의자 밑바닥을 닦아놓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전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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