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Aug 30. 2019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오늘 출근이 어려운데요

#15. 피치 못할 개인 사정을 전달하는 방법

장래희망은 회사원 15.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직원을 새로 고용했다. 그리고 그 직원이 첫 출근하는 날, 이런 문자 한 통을 보냈다.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오늘 출근이 어려운데, 내일부터 출근하면 안 되겠냐고. (예..?) 이 이야기를 들은 나와 친구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피치 못할 사정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지만 당일에 문자 한 통만 달랑 보내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니냐고. 최소한 전화라도 해서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던 친구가 말했다.


"우리보다 어린 사람들은 문자가 익숙하니까, 전화를 할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89년생인 나는, 십 년 전 처음으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만져봤다. 그 전에는 문자가 아예 없었거나 있어도 쓸 수 있는 사용량이 늘 부족했으므로 문자보다는 전화를 사용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일까, 스마트폰을 갖게 된 후 거의 전화를 쓰지 않았지만 여전히 전화를 하는 게 낯설지가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유독 업무 관련 전화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나 역시 사회초년생 때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전화를 하면 괜히 다들 내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거나 가급적 전화를 피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내용이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꼭 확인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전화를 이용했다. 단순히 더 예의 있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화는 문자에 비해 커뮤니케이션에 오해와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문자는 상대방의 상황과 상관없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반면, 전화는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없다. 언젠가 친구와 5시에 약속을 잡고 약속 시간에 맞춰 장소에 나갔는데 친구가 제시간에 나오지 않아 화가 났다. 알고 보니 친구가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미리 문자를 보냈는데 내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친구는 분명 늦는다고 문자를 했건만 왜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냐고 했고, 당시엔 나에게도 일정 부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문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카페 사장님이라면 그 직원과 함께 일하지 않을 것 같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출근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이므로. 설사 친구의 말처럼 문자가 너무 익숙해서 전화를 할 생각을 못했다 치자. 그러나 본인의 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본인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대신 책임을 짊어지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다면, 일방적으로 문자 한 통을 보내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 문자 한 통으로 책임을 다했다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첫 출근하는 직원을 기다리던 사장님을 대신해 열을 토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자 밑바닥을 닦던 그때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