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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19. 2020

촉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발걸음이 안 맞는 것에서부터 느낌이 왔다. 우리 사이가 틀어지고 있음을. 뒤에 서서 한참 동안 걸음을 멈췄다. 변화가 느껴진다는 건, 상대방이 과거와는 다른 어떠한 느낌을 주거나 나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살기 힘들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하지만 나는 결국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만다.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촉 발동이다.


친구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함부로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이래저래 생각할 틈도 없었을 만큼, 나는 그 사람이 친구에게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명백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의 범상찮은 눈빛이 불편했다. 조언의 대가로 한동안 여러 사람과 불편한 관계로 지내야 했고, 다시는 그런 조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주제넘은 판단일지 몰라도 내 친구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본성은 내 촉과 다르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5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밀라논나 할머니는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남친이 저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2년 동안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겁이나요."라는 한 젊은이의 연애 고민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몸에 집중하세요."


출처 : 밀라논나 유튜브

정이 들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이유다. 그러나 몸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건너편에 그 사람이 서 있는 모습만 봐도 긴장이 되진 않는지, 그의 무뚝뚝한 표정을 보며 전전긍긍해하고 있진 않은지, 같이 밥을 먹는데 속이 더부룩하진 않은지 내 몸을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지금 그 사람과 계속해서 만나도 좋을지, 아닐지.


보이지도 않는 머릿속에 기대기보다는 눈에 보이고 정확하게 짚이는 몸의 변화를 관찰해보기를. 갑자기 오토바이가 달려들면 무슨 생각을 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는 것처럼, 나에게 불편한 것은 내 몸이 알아서 거부한다. 나는 밀라논나 할머니에게 사연을 보낸 그분의 이야기에서 '겁'이라는 단어에 조심히 귀를 기울여본다. 그녀는 이미 이 관계에서 겁을 먹었고, 겁은 몸으로 나타난다.


갓난아기도 옆에 엄마가 없으면 울고, 아빠가 장난감을 흔들어주면 웃는다. 머리로 많은 지식을 쌓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내 몸의 본능은 하찮게 여겨왔던 건 아닌지. 지금 내 감정이 헷갈리고 마음 상태가 어지럽다면 머리를 끄고 몸의 촉을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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