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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n 10. 2020

대표님이 빨간펜을 들었다

"이 부분은 애매하네요. 이렇게 수정하는 게 더 명확하지 않을까요?”


약간 찝찝하다고 느꼈지만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기에 애써 넘어간 부분이었다. 내가 쓴 보고서를 보자마자 대표님은 빨간펜으로 딱.딱.딱. 수정해야 할 부분을 찾아내셨다. 수정하고 또 수정하다보면 이 정도는 넘어가자, 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대표님은 귀신같이 그 부분마다 빨간색 줄을 그었다.   


대표님은 동시에  가지 일을 해낼 만큼 바쁜 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짧은 시간 안에 칼같은 피드백을 주셨다. 대표님이 그렇게   있었던 이유는, 같은 지점의 문제를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출판사에서 일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10 포인트의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원고를 보다보면 글씨가 글씨처럼 보이지 않고 지렁이처럼 보였다. 오탈자란 오탈자는  검토했다고 생각했는데 원고가  권의 책으로 찍히고 나서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가 보였다. 다음  원고 뭉치를 전달 받으면 당연히  오탈자가 없는지부터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빈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것이다.


유독 숨은그림찾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화면에 그림이 뜨자마자 친구는 숨은 그림을 찾아 빨간펜으로 딱.딱.딱. 동그라미를 쳤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빨리 찾아낼까 싶어 나도 특훈에 들어갔다. 멀리서도 보고, 측면에서도 보고, 요래조래 보다보니 숨은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빈틈은 어딘가 불편한 지점에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어색하고 저것 하나만 빼면 완성될 듯한 지점. 가방이 있으면 안될 자리에 가방이 있거나 아이스크림이 있기엔 어색할 자리에 아이스크림이 있는 것.   


업무가 잘 안 풀리거나 복잡한 프로세스 때문에 골치가 아플 때면 머릿 속으로 빨간펜을 상상한다. 만약 대표님이라면 지금 어디에 빨간펜을 그으실까를 생각해보면, 거기가 바로 빈틈이다.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어색할 자리에 아이스크림을 놓고 스리슬쩍 타협하고 넘어갈 것인가, 기어이 빨간펜을 긋고 고칠 것인가에 따라 결과물은 걸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한다. 숨은 아이스크림은 언젠가는 발각되기 마련이다.

Cartoon by Sergio Dru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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